中, 파나마항구 매각 또 비난…관변매체 "美와 춤추면 미래없어"

연합뉴스 2025-03-17 12:00:07

대공보 사설 통해 CK허치슨-美블랙록 거래에 재차 불만 표시

외신 "中당국 압박 수위↑…개입 시도 우려 커져"…거래 막을 직접 권한은 없어

홍콩 기업 CK 허치슨이 운영하는 파나마 운하 두 곳 중 한곳인 발보아 항 모습.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관변매체를 통해 홍콩 기업의 파나마 운하 항구 운영권 매각 거래에 불만을 드러낸 중국이 해당 매체의 또 다른 사설로 재차 이를 비난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17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싱가포르 연합조보 등에 따르면 중국공산당 중앙홍콩마카오 공작판공실(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과 중앙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은 지난 15일 홍콩 기업 CK허치슨을 겨냥한 홍콩 대공보(大公報)의 논평을 공식 홈페이지에 올렸다.

대공보는 '위대한 기업가는 모두 쟁쟁한 애국자'라는 제목의 이 논평에서 이달 초 CK허치슨이 파나마 운하 항구 운영 사업권 등을 미국계 자산운용회사인 블랙록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한 데 대해 "왜 이렇게 중요한 많은 항구를 악의를 가진 미국 세력에 쉽게 양도했는가"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개혁개방 초기인 1970년대 후반 중국 본토에 방적공장을 설립한 홍콩 기업가 초우궝비우(曹光彪)와 미국 제재에 맞선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 등을 예로 들면서 "역사와 현실은 미국의 강권과 괴롭힘에 직면했을 때 국가와 함께 굳건히 서서 용감하게 싸워야만 나라와 존엄성, 명예를 지킬 수 있음을 험난한 상황에 부닥친 기업인들에게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반대로 '돈뿐만 아니라 목숨도 요구하는' 미국 정치인들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들과 춤추기를 택해 역행한다면 일시적으로는 '큰 거래'에 성공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미래가 없으며 역사에 오명을 남기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 매체는 지난 13일에도 '순진하고 어리바리한 척 하지 말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파나마 항구 매각 거래를 "전체 중국인을 배신하고 팔아넘긴 것"이자 "미국이 협박, 압박, 회유 등 비열한 수단을 통해 다른 나라의 정당한 권익을 착복한 패권적 행위"라고 비난한 바 있다.

대공보는 중국 정부 소유에 중앙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의 통제를 받는 매체다. 홍콩에서 중국 중앙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중국 당국은 두 논평 모두 전문을 홈페이지에 게시해 메시지에 더 힘을 실었다.

외신들은 중국 당국이 이들 논평을 통해 해당 거래에 명백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한 데 이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 최대 부호 리카싱의 2018년 모습

AFP통신은 "(13일자) 논평은 대공보의 사설 면에 게재된 데 비해 15일 논평은 1면에 발췌본이 실렸고 전문은 3면에 배치됐다"며 "중국 당국이 사흘간 두차례에 걸쳐 파나마 운하 항구 매각 거래를 비판하는 사설을 게재하면서 CK허치슨이 재차 압박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당국이 파나마 항구 지분 매각을 공격하는 두 번째 신문 논평을 공유하며 CK허치슨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며 "이 거래는 해외 자산 대상이어서 중국의 승인을 필요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공격(논평)으로 당국이 어떻게든 개입을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 재벌 리카싱 청쿵(CK·長江)그룹 창업자 가문의 주력 회사인 CK허치슨은 지난 4일 파나마 운하 항구 운영사 지분 90%를 포함해 중국·홍콩 지역을 제외한 전 세계 23개국 43개 항만사업 부문 지분 등 기타 자산을 블랙록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거래 규모는 228억 달러(약 33조2천억원)다.

이 발표는 지난 1월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이 파나마 운하를 운영한다"며 운하 통제권을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한 데 뒤이어 나왔으나 프랭크 식스트 CK 허치슨 상무이사는 "본 거래는 순전히 상업적 목적이며, 최근 파나마 항구에 관한 정치적 뉴스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CK허치슨은 공시를 통해 블랙록과 145일간 독점적으로 협상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으나 거래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 거래는 또한 CK허치슨 주주들과 파나마 정부 등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그간 이 사안에 공식 입장을 표명하지 않던 중국 당국이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면서 당국이 거래를 무산시키거나 더 나은 조건으로 협상하도록 CK허치슨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CK허치슨이 중국 본토·홍콩 이외 지역에서 매출의 90%를 내는 점, 중국 당국이 이번 거래를 막을 직접 권한이 없는 점, 내수·부동산 침체 때문에 리카싱 일가의 부동산 부문 기업인 CK에셋홀딩스를 통해 조치를 취하기도 어렵다는 점 등에서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카드는 적다는 지적도 나온다.

inishmor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