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4세 고시 영국은 3세 과외…"기가 막힌 어른들의 욕망"

연합뉴스 2025-03-17 09:00:03

영국 일부 학부모도 아이 2살 반부터 명문 학교 준비시켜

어린 시절부터 과열된 경쟁이 사회적 성공 보장 안 해

영국 올림픽 조정 은메달리스트가 쓴 책 '롱 윈'

영어유치원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소위 학군지로 불리는 곳에선 '세는 나이'로 5세, 만으로 3세 또는 4세가 되면 '경쟁'이 시작된다. 그 스타트는 영어유치원(영유) 입학이다. 부모들은 아이를 유명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과외를 하고, 학원에 보낸다. 이들 유치원에 입학하려면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명 영유 입학은 이른바 '로드맵'의 시작에 불과하다. '영유' 3년을 채우고 나면 7세 말에는 유명 영어 학원 입학테스트가 기다리고 있다. 3대 학원, 5대 학원 등 분류법도 제각각이다. 학부모 입장에선 초2 때까지 아이의 영어를 어느 정도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이들 학원에 아이를 입학시켜야 한다.

공부하는 초등학생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다. 유·초등 '고시'의 끝판왕은 '9세 고시'다. 초등학교 2학년 또는 3학년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A 수학학원 입학테스트 합격이 유·초등학생 부모들의 최종 목표다. 영어가 절대평가로 돌아선 후 수학이 의대 합격 등 대학입시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이 학원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통상 매년 11월 초에 시행되는 A 수학학원 입학테스트에는 전국에서 1만명가량이 참가한다. 이 학원 본점이 있는 서울 대치동 일대는 이날 학생과 학부모가 몰리면서 수능 시험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북새통이 된다. 학생들 사이에선 A 수학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사고력 학원'에 다니는 게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초등 의대반

이런 로드맵을 따라가려면 상당한 '실탄'이 필요하다. 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2024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에 따르면 영어유치원의 월평균 비용은 154만5천원에 달한다. 우리나라 6세 미만 미취학 아동의 1인당 사교육비도 월평균 33만2천원이었다. 소득이 많은 가정은 그만큼 사교육에 더 많은 돈을 투자했다. 소득 규모별 사교육비 격차는 7배에 육박했다.

하지만 이런 교육 열풍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국 학부모도 우리나라 학부모 못지않게 열정적이다.

영국의 한 초등학교

신간 '롱 윈'(클랩북스)에 따르면 영국의 일부 학부모들은 아이를 런던 명문 사립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두살 반부터 진학 준비를 시킨다. 좋은 유치원에 들어가지 못하면 좋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러면 중학교나 고등학교도 그저 그런 곳에 가야하고, 결국 명문대 입학도 물거품이 된다고 그들은 믿는다.

"우리 아들 때문에 걱정이에요. 연필 쥐는 법을 가르치려고 해도 도통 관심을 안 보이거든요. 이대로라면 명문 학교에 들어가지 못할 텐데. 그러면 앞으로 아이 인생이 어찌 될지 막막하네요. 다행히 주변에서 과외 선생님을 추천받았어요. 부디 그분이 입학 면접을 잘 대비해 주면 좋겠어요."

2004 아테네올림픽 조정 은메달리스트이자 '롱 윈'의 저자인 캐스 비숍이 이웃에게 들은 말의 일부다. 대화를 나눌 당시 이 이웃의 아들 나이는 두살 반에 불과했다.

비숍은 이처럼 지나친 이른 사교육에 대해 "기가 막힌 어른들의 욕망"이라고 묘사하면서 "명문 사립에 보내기 위해 두살 반부터 준비시킨다니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사립학교 오케스트라

하지만 어릴 적부터 이른바 '달린다'고 해서 아이의 인생이 나아질까. 나아가 사회의 리더로 자랄 수 있을까. 미국 교육학자 케런 아널드 전 보스턴칼리지 교수가 고등학교 수석 졸업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고등학교 성적은 대체로 대학까지는 이어지나 직장에서의 성과와는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들 대다수가 훌륭한 직업을 가졌어도 세상을 이끌거나 바꾸지는 못했다.

아널드 교수는 이들이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로 '규칙을 잘 따르고 시험에 필요한 것만 공부하는 태도'를 꼽았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직장에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직장에선 규칙이 불명확하고, 기존 범주를 넘어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면 서로 경쟁자가 될 뿐이다. 사회성을 익혀야 할 시기에 정작 친구들과 협동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서열과 경쟁에 갇혀 내가 승리하려면 다른 친구가 패배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진다"고 지적한다.

이어 "학창 시절에 대개 혼자서 공부하던 것과 달리,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조직이 팀으로 일한다"며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승리하는 법을 배우는 상대적 교육이 강조될수록 똑바로 배우고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단기간의 성과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이기기' 위해선 경쟁이라는 본연의 말뜻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경쟁의 어원은 합동에서 출발하고, 이는 사회적 성공과도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경쟁이라는 뜻의 competition은 라틴어 competere에서 파생된 단어다. 이 라틴어의 뜻은 '함께 노력하다'로, 그 바탕에는 합동이 만들어 내는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정성재 옮김. 392쪽.

buff2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