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3.0] '한국사위' 수잔 샤키야 "네팔 인사말 혹시 알고 계신가요?"

연합뉴스 2025-03-17 09:00:02

차세대 리더를 만나다 "혐오는 무지의 소산…서로 문화 배워야"

인도·아세안 지역전문가 도전장…"한국과의 가교 역할 하고파"

2023 대한민국 다문화 페스타, 강연하는 수잔 샤키야

(서울=연합뉴스) 김지선 기자 = "한번은 국회 토론회에서 '혹시 네팔 인사말을 알고 계시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거기 오신 분들이라면 최소한의 정보는 갖고 계셔야 하지 않나 안타까웠던 순간이죠."

네팔 출신 방송인 수잔 샤키야(37) 씨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 전 두 손을 모아 가슴 높이에서 합장하며 '나마스테'라고 인사했다. 산스크리트어인 나마스테는 '내 안에 있는 신이 당신 안에 있는 신을 존중한다'는 의미.

지난 2023년 기준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네팔인은 약 6만명으로, 국적별 등록 외국인 중 8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수교 50주년을 맞았을 만큼 오랜 인연을 이어왔지만, 여전히 네팔 하면 '히말라야' 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한국인에겐 '허를 찌르는' 질문이었던 셈이다.

지난 2010년 우연한 기회에 6개월짜리 어학연수 비자로 첫걸음을 뗀 그의 한국살이는 어느덧 15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JTBC '비정상회담'에 네팔 대표로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고, '지극히 사적인 네팔'이라는 제목의 책도 냈다. 재작년에는 한국인 여자친구와 백년가약을 맺고 '한국사위'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샤키야 씨는 "나쁜 기억도 있지만 '전생에 한국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 만큼 좋은 기억이 많아서 오래 머물게 된 것 같다"며 웃었다.

과거 네팔 출신이라고 소개하는 그에게 사람들이 "내 팔?"하며 자기 팔을 들어 보일 때면 화도 났던 것이 사실이라고. 그러나 이제는 이를 대화의 물꼬를 트는 소재로 쓸 만큼 여유도 생겼다.

서울시 명예시민에 선정된 외국인들

샤키야 씨는 "과거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분이 '한국에 화장실이 있냐'는 질문을 받고 황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며 "이처럼 무지에서 나오는 혐오는 편견을 만들고, 편견은 또 다른 차별을 낳는다"고 강조했다.

이따금 고깝게 들릴지라도 이른바 '국뽕' 발언보다는 '쓴소리'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한류 덕분에 네팔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한국 문화가 주목받고 있지만, 한국인에게 동남아 등 일부 국가는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것 같다"며 "이들 나라에 관심을 갖는다면 서로의 문화를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서울시 명예시민, 법무부 사회통합 이민자 멘토, 문화체육관광부 문화다양성위원회 민간위원까지…

낙하산을 제작하는 방산업체 소속 'K-직장인'이면서 통번역, 강연, 방송에 눈코 뜰 새 없는 스케줄 속에서도 올봄에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인도·아세안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게 된 것.

그는 "네팔에서도, 한국에서도 오래 살아봤기 때문에 양국 간 가교 역할이 가능할 것 같다"며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지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전문지식을 갖고 정책 제안 등 활동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안산 국민소통포럼에서 강연하는 수잔 샤키야

최근 설문조사 결과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 유학생 10명 중 4명은 본국이나 제3국이 아닌 한국 취업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한국에 자리 잡으면 우수 인재 확보와 인구 절벽 해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터.

역시 한국 유학생 출신인 샤키야 씨는 이를 위한 선결 과제로 '전공과 직무의 유사성'이 있어야 나오는 일부 취업 비자 규정의 완화를 꼽았다.

그는 "저 역시 도시계획을 공부했지만,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만큼 전공을 살리는 것은 쉽지 않다"며 "외국인에겐 취업의 문이 더 좁은 만큼 졸업 후 바로 구직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큰 스트레스"라고 지적했다.

반면 "예전엔 한국어능력시험 4급을 따야 한국 대학교 입학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그런 제한이 많이 사라졌다"며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갖춰져야 적응이 쉬운 만큼 이 부분은 더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린 카펫에서 인사하는 엄홍길·수잔 샤키야

자신 또한 '다문화가정'을 꾸린 외국인으로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다문화 청소년 등 이주 배경 청소년에게 "두 나라의 기질을 다 가졌기에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얘기해주고 싶다는 샤키야 씨는 다문화 2세에게 '세계 시민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sunny1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