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호부관아·옛 병원·창포다리…강릉 걸으며 보는 미술작품

연합뉴스 2025-03-17 00:00:25

제3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 개막…윤석남·홍이현숙·정연두·호추니엔 등 참여

(강릉=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강원도 강릉의 유적지인 강릉대도호부 관아. 국보인 객사문과 보물 칠사당이 남아 있는 이곳의 너른 마당에 나무 개(犬) 수백 마리가 자리 잡았다. 윤석남 작가가 유기견들을 돌보는 이애신 할머니의 사연을 바탕으로 개들의 윤곽으로 자른 나무판 조각 위에 개 모양을 그려 넣은 작품 '1,205: 사람과 사람 없이' 중 일부로, 전체 1천25점 중 367점이 야외 마당에서 사람들과 만난다.

강릉을 여행하며 미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IAF)이 지난 14일 개막했다.

2022년 시작해 3회째인 올해는 '에시자, 오시자'를 주제로 열린다. '에시자, 오시자'는 강릉단오굿에서 악사들이 사용하는 구음(국악기의 소리를 입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따온 것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를 초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강릉의 대표적인 축제인 강릉단오제와 연계된 공간들을 중심으로, 강릉의 유휴공간과 문화공간들이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강릉대도호부 관아의 중대청에서는 홍이현숙 작가의 신작 퍼포먼스 영상이 상영된다. 퍼커셔니스트가 중대청과 칠사당 등을 두드리는 모습과 작가의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으로, 2022년 동해안 산불로 검게 변해버린 산의 모습을 본 작가가 기도하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강릉대도호부 관아의 또다른 건물인 전대청에는 GIAF를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흐라이르 사르키시안 작가 3채널 영상 작업이 설치됐다. 1915년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생존자였던 작가의 조부모와 관련된 개인사를 담은 작품이다.

강릉대호부 관아 곳곳에는 공모를 통해 선정된 지역 기반 작가인 안민옥의 작품이 보물찾기하듯 숨어있다. 강릉 단오제 때 나는 소리와 진동을 채집해 이를 7개 사운드 아트 작품으로 구현했다.

유휴공간들도 전시장으로 활용했다. 강릉에서 처음 문을 연 외과의원인 옛 함외과의원 건물은 이해민선 작가와 부부작가 키와림의 전시장이 됐다. 과거 단오제를 보러오는 이들이 묵은 여관이었던 한옥은 이번 행사를 맞아 '일곱칸짜리 여관'으로 탈바꿈해 서다솜 작가의 전시와 워크숍 무대가 됐다.

1958년 준공된 교회 건물을 기반으로 한 약 100석 규모의 '작은공연장 단'에서는 한국무용가 이양희가 '이양희 산조'와 비디오 작업 '이양희 입춤'을 선보인다. 한국 신무용에서 파생된 산조와 입춤을 재구성한 작품들로, 행사 기간 매주 주말 이양희의 산조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1950년대 양곡 창고로 만들어졌던 옥천동의 웨어하우스에서는 정연두 작가의 3채널 영상 작업이 상영된다. 작가가 강릉단오제에서 마주한 모습에 피아노 연주가 곁들여진 작품이다. 강원도의 유일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인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는 싱가포르 작가 호추니엔의 작업을 선보인다. 작가의 기존 작품 5점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편집한 1시간 40분 분량의 '변신술사'다. 홍콩 배우 량차오웨이(양조위)가 출연한 영화들을 짜깁기해 3중 스파이로 활동한 '라이텍'이란 인물의 이야기로 만든 '이름없음'(The Nameless) 등을 볼 수 있다.

이밖에 강릉역과 창포다리에도 지역 공모를 통해 참여한 김재현 작가의 현수막 설치 작업이 걸렸다.

GIAF는 강릉에 본사와 공장이 있는 바이오제약회사 파마리서치가 설립한 파마리서치문화재단이 여는 행사다. 2022년 1회가 열렸고 2023년부터 격년제로 전환했다. 비슷한 행사들이 매번 예술감독이 바뀌는 것과는 달리 박소희 감독이 1회부터 계속 총괄하고 있다.

전시장은 모두 도보로 둘러볼 수 있는 거리에 있어 찬찬히 강릉이란 도시 곳곳을 경험할 수 있고, 지역의 대학생과 마을 해설사가 시티 도슨트, 시티 가이드로 참여한다.

지금까지 시장과 터널, 옛 병원, 양곡창고 등 강릉의 다양한 공간들을 전시장으로 활용했던 GIAF는 2027년 4회 행사 때부터 강릉 안현동에 전용 공간을 마련해 새로운 시도에 나설 예정이다.

박소희 총괄감독은 "3회까지는 강릉이란 도시를 발굴하고 발견하고 재탐색하는 시간이었다면 4회는 또다른 장(챕터)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는 4월 20일까지 계속된다. 무료 관람.

zitro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