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 정서 대세지만…앨버타주 등 서부 지역 노동 계급 일부 호응
"트뤼도 정권서 우리만 손해"…"트럼프, 오랜 분리주의 정서 건드려"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할 수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으로 인해 캐나다 국민들 사이에서 반(反)미 정서가 급격히 확산하고 있지만,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이를 환영하는 움직임도 일부 보수층 유권자들 사이에서 감지되고 있다.
특히 진보당 정권의 친환경 정책 등에 불만을 느끼던 서부 지역 주민들의 오래된 '분리주의 정서'를 트럼프 대통령이 건드렸다는 진단이 나온다.
1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캐나다 여론조사 기관 앵거스 리드 조사에서 캐나다 국민의 90%는 캐나다가 미국의 주로 편입되는 것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캐나다 레지나대학 역사학 교수인 레이먼드 블레이크는 텔레그래프에 응답자의 10%가 사실상 배신행위로 여겨지는 미국 편입을 "환영한다"고 답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앨버타·서스캐처원 등 캐나다 일부 서부 주에 존재하던 뿌리 깊고 오래된 분리주의 정서를 자극한 결과라는 것이다.
앨버타와 서스캐처원 인구는 캐나다 전체의 약 10%로 이번 여론 조사 결과와도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이 중 분리주의 세력이 특히 강한 앨버타주는 캐나다의 대표적인 석유 생산 지역이다.
석유로 인한 소득에 힘입어 이 지역은 캐나다 전체에서 가장 부유한 주 중 하나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캐나다의 진보 정권의 정책으로 자신들이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이 커져왔다.
지난 주 자리에서 물러난 쥐스탱 트뤼도 전 총리의 아버지인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는 1980년대 초부터 앨버타주에서 생산한 석유로 벌어들인 수익을 퀘벡주나 진보 성향의 온타리오주 등 캐나다 다른 지역에 분배하는 정책을 펼쳤다.
2015년 들어선 아들 트뤼도 정권은 친환경 기조를 내세우며 화석연료 생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결과 이 지역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이 생산하는 석유로 먹고 사는 동부 지역의 도시 엘리트들로부터 정작 자신들은 무시당하고 있다는 정서가 퍼진 것이다.
앨버타주의 석유 생산 노동자인 크리스 헌터(40)는 텔레그래프에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헌터는 자신은 적극적인 분리주의자는 아니지만,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진짜로 캐나다를 점령한다면 앨버타주를 떠난다는 생각을 재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초 앨버타주의 한 농장에서는 캐나다의 미국 편입을 지지하는 일부 지지자들이 모인 소규모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캐나다 정부의 백신 의무화 정책부터 캐나다의 국방력 약화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으며 한 참가자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를 언급하며 앨버타주도 영국이 그랬듯 캐나다 연방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집회에 참가한 제임스 고란스루드는 미국의 정치 시스템이 자신과 같은 농촌의 보수적인 유권자들에게는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서부 분리주의 지지자인 석유 노동자 피터 다우닝은 텔레그래프에 "우리는 더 낮은 세금을 원한다"면서 "그리고 우리는 다시는 오타와주에 '평등화'라는 이름으로 한 푼도 내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을 외치며 석유 붐을 독려하고 있는 것도 이들에게는 '미국 편입'을 지지할 이유가 되고 있다.
다우닝은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를 장악하게 된다면 앨버타주의 석유 산업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없애줄 것이라면서 석유 생산량은 최대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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