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특파원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현지에 출장을 온 한국 정부대표단 취재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주요 현안과 관련해 협의차 현지를 찾는 경우 누구와 접촉하는 지, 협의 내용 등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루트로 취재하는 게 일상이다.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언론을 피할 때는 취재 대상을 무작정 기다리는 일명 '뻗치기'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역으로 정부대표단에서 특파원들에게 취재를 먼저 요청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자신들의 출장 '성과' 홍보가 필요해서다.
지난 10일 브뤼셀을 찾은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인터뷰[https://www.yna.co.kr/view/AKR20250310149100098?section=search]도 현지 대사관을 통해 먼저 요청이 왔다.
짐작건대 당시 열린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무역위원회 결과를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발(發) 관세에 대한 우려가 워낙 큰 상황이었기에 기자 입장에서도 대미협상을 책임질 통상교섭본부장 취재 기회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정 본부장은 인터뷰 중 방미 계획을 묻자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다며 "전략적 시점을 계산 중"이라고 했다.
관세 시행이 코앞인데 조속한 방미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빨리하는 것에 따른 장점도 있지만, 다른 나라가 일을 어떻게 전개해 나가는 지도 보면서 저쪽(미국)으로부터 점수를 더 딸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정 본부장은 "사실은 지금 미국 당국자들이 아직은 협상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산업부는 인터뷰 이틀 만인 12일 정 본부장이 방미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13일 워싱턴에 도착했다.
워싱턴 특파원단에는 항공편 도착시간이 미리 공지됐다고 한다. 우리 정부가 대미 관세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것을 '홍보'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정 본부장이 강조한 전략적 시점 계산, 그리고 미국이 협의할 준비가 안 됐다던 내부 판단이 이틀 만에 바뀐 것일까.
사실 인터뷰 당시 그의 방미 일정은 내부적으로 잠정 결정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결과적으로 EU 출장 성과를 홍보하기 위해 인터뷰를 자처하곤, '원치 않는' 질문을 하자 거짓 답변을 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언론을 통한 발언은 사담이 아니다. 국민에게 전달하는 정부의 메시지다.
원하는 사안만 취사선택해 그럴듯하게 포장해 홍보하는 수단도 아니다.
각국이 관세협상을 위해 앞다퉈 방미하는 상황에서, 정 본부장의 방미 시점을 막판까지 '극비'에 부쳐야 했던 까닭도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산업부 당국자는 연합뉴스 항의에 부연설명 없이 "유구무언"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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