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명 탐방객 찾으며 연간 700명 안팎 응급환자 발생
"건강 과신 말고, 체력 떨어지면 등산 멈추고 하산해야"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봄·여름·가을·겨울 할 것 없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한라산.
봄과 가을에는 털진달래와 산철쭉·단풍을 보기 위해 한라산을 찾고, 여름에는 집중호우 뒤 백록담에 꽉 들어찬 만수를, 겨울에는 겨울왕국으로 변한 한라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러 탐방객이 모여든다.
하지만 한라산 탐방객이 늘면서 산을 오르다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등 수많은 산악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 해방 후 첫 한라산 조난사고 기록은?
해방 후 한국인 최초의 한라산 조난사고는 1948년 1월 6∼22일 전탁 대장 등 5명으로 구성된 '한국산악회 제2차 적설기 한라산 등반대'로 기록돼 있다.
이들은 쾌청한 날씨 속에 백록담에 오른 뒤 기상관측을 하며 황홀한 한라산 석양빛에 넋을 놓기도 했으나, 몇 시간 뒤 40년 만에 불어닥친 폭설을 맞닥뜨릴 줄 상상도 못 했다.
돌변한 기상 상황으로 인해 며칠간 밤새 가슴까지 차오른 눈을 헤치며 하산을 시도했으나, 혹독한 추위와 피로를 이겨내지 못하고 전탁 대장이 급기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4명의 나머지 대원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끝에 겨울 한라산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 부족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후에도 한라산 조난사고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1962년 8월 1일 전남 광주에서 제주에 온 대학생 오모(23)씨 등 3명은 달랑 모포와 쌀, 라디오 등을 배낭에 담고 등산을 시작했다.
전날 태풍 예비특보가 내려진 데 이어 당일 오전 6시 태풍경보가 발효된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한라산에 오른 오씨 등은 한라산 영실에 들어서자 나무가 쓰러질 정도로 날씨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런데도 이들은 끝까지 산행을 고집했다.
태풍 '로라'는 폭우를 동반한 초속 30m 내외의 강풍을 몰아쳤고 이들은 약 1천500m 고지에서 하산을 결심했으나 너무나 뒤늦은 결정이었다.
생쌀을 씹어먹으며 공포의 밤을 지낸 뒤 다음날 오전 11시께 해발 900m 지점에서 불어난 탐라계곡을 무리하게 건너다 일행 3명 중 오씨가 결국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오씨의 사고는 한라산의 첫 여름철 조난사고로 기록됐다.
1965년 9월 4일에는 휴가 중인 군인 이모 상병이 한라산 개미목 비탈진 낭떠러지에서 순간의 실수로 발을 헛디뎌 계곡으로 추락해 한라산 첫 추락사고가 됐고, 1971년과 이듬해 여름에는 충남 금산 이모(19)군과 부산시 동구 김모(21)씨가 연이어 백록담 분화구에서 수영하다 익사하기도 했다.
무더위 속에 가파른 능선을 올라온 후 더위를 참지못하고 성급하게 뛰어든 탓에 심장마비가 온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고는 변화무쌍한 한라산 기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무리한 등반을 하거나 충분한 장비 없이 산을 오르다 목숨을 잃는 등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 해마다 700명 안팎 산악사고…20·30·50대 많아
한해 100만명 등반객이 한라산을 찾으면서 해마다 700명 안팎의 산악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15일 한라산국립공원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한라산 탐방객 응급환자는 722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5월 한라산 관음사 코스 5-29 지점을 등반 중이던 60대 관광객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소방헬기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고, 9월에는 30대 관광객이 한라산 정상 백록담 부근에서 폭염으로 탈진했다가 다른 탐방객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한라산 탐방객 응급환자를 유형별로 보면 탈진 111명, 골절 6명, 사망 4명, 조난 2명, 기타 599명 등이다.
응급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탐방코스는 성판악 코스로 356명의 응급환자가 발생해 전체의 49.3%를 차지했다. 특히 성판악 코스 중에서도 해발 1500m 높이의 진달래밭 대피소(161명) 부근에 집중됐다.
이어 관음사 316명(43.8%), 어리목 39명(5.4%), 영실 9명(1.2%), 어승생악 2명(0.3%), 돈내코 0명 등이다.
사망자가 발생한 코스 역시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성판악과 관음사에서 각각 2명씩 발생했다.
탈진도 관음사와 성판악에서 각각 83명(74.8%), 22명(19.8%)이 발생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응급환자 발생 연령은 20·30·50대가 가장 많았고, 하산시간인 오후 2∼6시에 집중됐다.
연령별로 보면 10대 미만 9명(1.2%), 10대 71명(9.8%), 20대 152명(21.1%), 30대 156명(21.6%), 40대 76명(10.5%), 50대 129명(17.9%), 60대 101명(14.0%), 70대 22명(3.0%), 80대 6명(0.8%) 등이다.
시간별로는 하산시간대인 오후 2∼4시 267명(37.0%), 오후 4~6시 287명(39.8%) 등으로 많았다.
요일별로는 주말보다 수요일이 126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로 화요일 115명, 토요일 107명, 일요일 106명, 목요일 101명, 금요일 90명, 월요일 77명 등이다.
한라산 탐방객 사고는 탐방객 수 증가와 연관성이 있다.
한라산 응급환자는 2012년까지 73명(사망 2명)으로 연간 두 자릿수에 그쳤지만 2013년 168명(〃 4명), 2013년 774명(〃 4명), 2014년 645명(〃 4명)으로 급증세를 보였고 연간 700명 안팎의 사망·부상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사고가 증가하는 이유는 한라산 등반객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한라산 연간 등반객은 지난 1981년 처음으로 10만명을 넘어선 뒤 1994년 50만명, 2010년 114만명, 2013년 120만명, 2015년 125만명 등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태,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그리고 한라산 보호를 위해 2021년 2월 1일부터 탐방예약제를 실시하면서 연간 탐방객은 100만명 안팎으로 줄었다. 지난해 탐방객 수는 92만8천409명이다.
한라산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올해 한라산 백록담 정상 주변에는 1월 27일 이후 폭설이 내려 누적 적설량이 230㎝에 달했고, 폭설 등 기상 영향으로 3월 중순까지 연속으로 49일간 입산이 통제되기도 했다.
한라산국립공원 관계자는 "한라산 안전사고는 자신의 건강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산행하거나 제대로 된 탐방 복장을 착용하지 않고 등산하는 등 지병·저체온증, 음주 후 산행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며 "한라산에서는 날씨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여벌 옷과 비상식량, 생수 등을 챙겨가야 하며, 노약자는 건강을 과신하지 말고 체력이 떨어지는 것 같으면 등산을 멈추고 하산해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b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