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떨어진 이시카와현서 최근 준동…윤봉길 의사 기념비·추모관 공격 대상
(도쿄=연합뉴스) 경수현 특파원 = 벌써 1년 넘게 시간이 흘렀다. 작년 1월 말 일본 군마현은 현립공원인 '군마의 숲'에 있는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를 철거했다. 현지 주민들이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후대에 알리고 반성하기 위해 2004년 현립 공원 안에 설치한 것이었다.
비석 앞면에는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문구가 한국어·일본어·영어로 적혔고, 뒷면에는 "조선인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준 역사의 사실을 깊이 반성,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한다는 글이 새겨져 있던 추도비다.
현지 시민단체는 이 비 앞에서 매년 추도제를 열어왔다. 그러던 도중 2012년 한 참가자가 '강제연행'을 언급했다는 점을 극우단체들이 문제 삼으면서 철거 요구를 제기했다.
그러자 군마현은 이를 빌미로 설치허가 갱신을 불허했다. 군마현이 애초 설치 허가 때 '정치적 행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던 만큼 이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뜻있는 시민단체는 군마현 결정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현지 법원은 지자체의 설치 허가 불허 처분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했고 집요한 일본 우익 세력의 '역사 지우기'는 결국 현실화했다.
최근에는 일본 우익 세력들이 군마현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가 있던 군마의 숲에서 약 220㎞ 떨어진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에서 꿈틀대고 있다.
오는 4월 가나자와시에 들어설 것으로 알려진 윤봉길 의사 추모관 개관 계획에 반발해 재일동포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이시카와현 지방본부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일에는 우익 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50대 일본인 남성이 운전한 경차가 민단 건물과 부딪쳤다. 사건 당시 민단 건물에는 사람이 없어서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민단 관계자는 "벽이나 차량 범퍼가 파손된 정도는 아니다"라면서도 "최근 일부 단체의 과격 행동으로 동포 사회와 주변 지역에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익 세력들은 가나자와시에 있는 윤 의사 순국 기념비 등도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 가나자와시 노다야마묘지에는 윤 의사 순국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이곳에서 100m가량 떨어진 곳에는 암장지적비가 설치돼있다. 모두 순국 60주년인 1992년 세워졌다.
윤 의사는 1932년 중국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일본군 간부 등을 향해 폭탄을 투척한 뒤 붙잡혀 사형 판결을 받고 가나자와시 일본군 시설에 갇혔다가 총살됐다. 당시 일본군은 윤 의사 유해를 몰래 묻었고 이곳 암장지는 바로 유해가 묻혀있던 장소다.
윤 의사 유해는 1946년 현지 재일교포 등의 노력으로 발굴돼 서울 효창공원으로 옮겨져 안장됐다. 그러나 유골 수습은 나무뿌리 등 방해물 때문에 완벽하지 못해 일부는 현지에 남아있을 가능성도 있다.
암장지적비는 2006년에도 일본 우익이 가나자와시에 감사 청구를 하면서 철거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이에 윤 의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활동하는 단체인 월진회 등이 나서 가나자와시에 2008년 돈을 내고 영구 임대해 지금까지 보존해왔다.
일본 우익 세력들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지역 주민이 순국 기념비 설립 때 가나자와 당국이 부지를 유상 제공한 것에 대해 재량권 남용 행정 행위라며 작년 8월 가나자와지방재판소(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원고 측은 "테러리스트인 윤봉길의 기념비는 사회통념에도 반한다"는 논리도 펴고 있다.
주일 한국대사관이나 민단은 이번 소송은 군마현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와 달리 허가 조건 위반 행위가 발생하지 않은 만큼 성격이 다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를 압박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적잖이 닮은 형식을 띠고 있기도 한다.
현지 법원의 올바른 판결과 지자체의 적극적 대응이 없다면 제2의 군마현 조선인 노동자 추모비 철거로 비화할 우려가 있는 셈이다. 판결은 오는 25일로 일정이 잡혀있다.
2008년 윤 의사의 암장지 영구 임대화를 위해 모금 운동을 펼쳤던 홍문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은 지난 12일 일본에 출장왔다가 이번 소송 이야기를 듣고 "(윤 의사의 순국기념비나 암장지가 훼손된다면) 일본의 도리가 아니다"라며 "새로운 한일 관계를 만들어가려는 근본정신도 훼손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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