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구팀 "번개 없이 초기 지구 바다에서 유기물질 생성 가능 확인"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지구 생명체 구성 물질은 바다에 떨어진 큰 번개가 아니라 폭포수나 파도가 부서질 때 생긴 크고 작은 물방울 사이에서 발생한 '마이크로 번개'(microlightning)에서 시작됐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스탠퍼드대 리처드 자레 교수팀은 15일 과학 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서 지구 초기 대기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체 혼합물에 물을 분사하면 DNA와 RNA 구성 요소 중 하나인 우라실(U) 등 탄소-질소(C-N) 결합을 가진 유기 분자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유기 물질이 어떻게 처음 생겨났는지는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이를 설명하는 유력한 학설은 다양한 가스가 혼재해 있는 바다에 번개가 칠 때 그 에너지에 의해 유기 물질이 만들어졌다는 밀러-유리 가설(Miller-Urey hypothesis)이다.
시카고대 해럴드 유리 교수와 스탠리 밀러 박사는 1952년 물과 무기 가스 혼합물에 전기를 가하면 유기화합물이 형성된다는 '밀러-유리 실험'(Miller-Urey experiment)을 토대로 지구 생명체 구성물질이 번개에서 시작됐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후 번개가 바다에 떨어질 때 메탄과 암모니아, 수소 같은 초기 행성 기체와 상호 작용해 유기 분자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많은 실험에서 확인됐다.
연구팀은 그러나 밀러-유리 가설이 가능성 있는 설명이지만, 번개가 너무 드물고 바다가 너무 넓고 분산돼 있어 유기 분자를 생성하는 현실적 원인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물방울이 스프레이나 물보라로 작게 부서질 때 상대적으로 큰 물방울은 양전하를, 작은 물방울은 음전하를 띤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고속 카메라를 사용해 반대 전하를 띠는 물방울이 서로 가까워질 때 그 사이에서 사람 눈으로는 감지하기 어려운 작은 섬광이 튀는 현상을 확인했다.
이 현상은 구름에서 에너지가 축적되고 방출되면서 번개가 치는 것과 비슷하다.
자레 교수는 이를 '마이크로 번개'라고 이름 붙이고 마이크로 번개의 작은 섬광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여전히 많은 에너지를 전달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어 초기 지구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질소, 메탄, 이산화탄소, 암모니아 등 가스 혼합물에 상온의 물을 분사하는 실험에서 시안화수소, 아미노산 글리신, 우라실 등 탄소-질소 결합 유기 분자가 형성되는 것을 확인했다.
자레 교수는 "반대 전하를 띤 미세한 물방울 사이에서 일어나는 마이크로 번개는 이전에 밀러-유리 실험에서 관찰된 모든 유기 분자를 만들어냈다"며 "이것이 생명을 구성하는 분자들이 처음 생성된 메커니즘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초기 지구에서는 틈새나 암석 등 사방에 물이 뿌려졌고, 그 물방울 속에서 이 실험에서 확인된 화학 반응이 축적됐을 수 있다"며 "이 연구는 사람들이 밀러-유리 가설에 대해 가졌던 많은 문제점을 해결해준다"고 덧붙였다.
◆ 출처: Science Advances, Richard Zare et al., 'Spraying of Water Microdroplets Forms Luminescence and Causes Chemical Reactions in Surrounding Gas', http://dx.doi.org/10.1126/sciadv.adt8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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