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셰프 떡국 나눔에 쪽방촌 모처럼 온기…"북적이니 행복"

연합뉴스 2025-01-26 14:00:05

최현석 셰프, 쪽방상담소와 200인분 대접…"음식으로 나누고 파"

최현석 셰프, 쪽방촌 떡국 나눔 푸드트럭

(서울=연합뉴스) 이율립 기자 = "잘 먹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설 연휴 둘째날인 26일 오전 인기 요리사 최현석 셰프와 보조 셰프들이 분주한 손길로 펄펄 김이 나는 떡국을 그릇에 담자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 쪽방촌에는 구수한 냄새가 널리 퍼졌다.

서울시립 서울역쪽방상담소는 엿새간의 긴 연휴에도 만날 가족 없이 외로이 시간을 보내는 쪽방 주민들이 온정을 느끼며 설을 쇨 수 있도록 최 셰프와 함께하는 떡국 나눔 행사를 준비했다.

최 셰프를 비롯한 상담소 직원들은 이른 시간부터 모여 주민 200명에게 대접할 떡국을 준비했다. 인근 가게에서 애호박전, 동그랑땡 등 모둠전과 과자 등도 마련했다.

긴 연휴 속에 휴일을 반납한 터였지만 누구도 얼굴에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최 셰프는 "먹는 것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라 먹는 것으로 나눠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명절 때 손주나 아들이 찾아온 느낌으로 기분 좋아하셨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유호연 상담소장도 "주민 대부분이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오셔서 떡국 한 그릇 드시고 연휴 기간을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했다.

'설 연휴에 따듯한 떡국 한 그릇'

배식 시간인 오전 11시를 전후하자 휑하던 상담소 주차장은 금세 쪽방 주민들로 가득 찼다.

한 주민은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감사합니다"를 외치더니 푸드트럭 안에 있는 최 셰프를 찾아가 "이 어려운 동네에 오셔서 명절날 쉬지도 못하고…"라며 다시 한번 인사를 전했다.

고기와 달걀 지단, 김과 파가 듬뿍 올라간 떡국을 한 그릇씩 받아 든 이들은 뜨끈한 떡국의 온기보다 동네가 오랜만에 사람들의 훈기로 가득 찬 것이 더욱 반가운 듯했다.

백광헌(68)씨는 "다들 10∼20년 쪽방에서 살다 보니 우울증도 앓고 서로 소통하는 것도 멀리한다"며 "오랜만에 북적이니 행복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웃었다.

홍이(62)씨는 "원래 같으면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든가 찬밥을 먹으면서 한 끼를 때운다"며 "명절에 떡국 먹기가 힘든데 덕분에 오늘은 따뜻한 한 끼를 먹었다"고 했다.

쪽방촌 어르신께 떡국 배달하는 최현석 셰프

배식을 마친 최 셰프와 상담소 직원들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떡국을 직접 배달했다.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 도착한 쪽방 건물 2층에 사는 국가유공자 이복기(82)씨는 떡국을 받아들고는 연신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1965년 1월 베트남 전쟁에 투입돼 1년 6개월 동안 전장에 있었다는 이씨는 과거 대구에서 사업을 하다 실패한 뒤 상경해 이곳에서 20여년을 머물렀다.

그는 "명절에 어디 갈 데도 없고 그냥 집에 있는다"며 "떡국을 해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했다.

가족이 그립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연락할 사람도 없고 연락할 필요도 없다. 하도 오래돼 그립거나 하진 않고…"라며 씁쓸한 듯 말을 줄였다.

2yulri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