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학자들의 생각 담긴 규장각본 제대로 공부할 수 있길"
한학자 윤종배·김경태·박찬규 씨 23년간 작업 끝에 완성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인(仁) 사상을 설파하기 위해 세상을 떠돌았던 공자(B.C. 551~B.C. 479)는 결국 그 뜻을 펼치지 못했다. 부국강병과 관계없는 그의 사상을 왕들은 외면했다. 공자는 정치를 하는 대신 책상에 앉아 봄과 가을이 지나가는 세월을 담담히 기록했다. 기원전 722년부터 481년까지 공자의 고향 노나라를 중심으로 200여년의 역사를 담은 책 '춘추'(春秋)가 탄생한 배경이다.
공자의 춘추는 지나치게 압축적이어서 읽어내기가 까다로웠다. 안회, 자로, 자하 같은 유명한 제자는 아니었으나 성실했던 제자 좌구명(左丘明)이 스승이 쓴 역사서에 해설을 덧붙였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 그렇게 탄생했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학자 사마천도 '사기'를 쓸 때 춘추좌씨전의 해설을 참고했다. 두예, 육덕명, 임요수 등 중국의 유명 학자들도 좌씨전을 연구해 해설서를 남기기도 했다.
성리학을 신봉한 조선의 학자들도 춘추좌씨전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정조 시대 브레인인 규장각 학자들도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물이 '춘추좌씨전 규장각본'(1797년)이다. 조선시대 학자들의 시각에서 정리한 해설서라는 점에서 자못 의미가 큰 프로젝트였다.
규장각 학자들은 춘추좌씨전 풀이의 전범(典範)으로 여겨지던 두예의 '춘추좌씨경전집해'(春秋左氏經傳集解)를 참고했다. '춘추'의 원문인 경문(經文)과 '춘추좌씨전'의 전문(傳文), 두예의 해설 중 일부인 주해(註解) 등을 모두 분리하지 않고 바로 이어지도록 편집한 것이 규장각본의 특징이다. 학계에선 내용적 통일성과 의미 전달 측면에서 혁신적인 판본으로 보고 있다.
최근 출간된 '춘추좌씨전 규장각본'(학고방)은 이 판본을 해설 번역한 책이다. 한국학 인재 양성 기관인 사단법인 유도회(儒道會) 소속 학자 윤종배, 김경태, 박찬규 씨가 번역 작업에 착수해 23년 만에 결실을 봤다. '춘추좌씨전 규장각본' 전체가 완역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동저자인 윤종배 씨는 "규장각본을 저본(底本)으로 삼은 책을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발간한 적은 있지만 규장각 학자들이 해설한 '주'까지를 완역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2002년 유도회 교수로 있던 고(故) 지산(地山) 장재한 선생의 지도 아래 저자 3인이 번역 작업에 착수했고 2014년 초벌 번역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난해한 원문 번역을 섬세하게 가다듬고, 꼼꼼하게 교열하는 데에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저자들은 지난한 작업 끝에 올 초에야 번역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책은 3권으로 구성됐으며 각 권은 모두 600쪽 안팎이다.
저자들은 "한문학을 오래 공부해 왔던 학자로서, 후배들이 좀 더 춘추 및 춘추좌씨전과 해설, 그리고 이에 대한 조선시대 학자들의 생각이 담긴 규장각본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번역 작업을 시작하고 진행했다"고 말했다.
1권 678쪽. 2권 592쪽. 3권 6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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