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향해 병풍치고 절 올려" 70년 흘러도 그리움은 여전

연합뉴스 2025-01-26 09:00:08

16살에 피난 온 김영점씨 "아흔 넘은 나이에도 가족 생각에 눈물"

김영점씨 부부

(부산=연합뉴스) 박성제 기자 = "설날이면 언제 돌아가셨을지도 모를 부모님이 계시는 북녘을 향해 항상 병풍을 치고 절을 올립니다."

70여년 전 한국전쟁으로 남쪽을 향해 피난을 온 김영점(91)씨는 설날을 어떻게 보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북한 사투리가 묻어나는 말씨로 26일 이렇게 말했다.

그에게 북한에 있을 당시 어디에 살았냐고 물으니 "결코 잊을 수 없는 내 고향"이라며 "황해도 연백군 용도면 안정리 ○번지"라고 또렷하게 말했다.

이어 "명절이면 고향 생각이 많이 난다"며 "가족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들려오다 보니 마음이 아파 혼자서도 많이 울고 한다"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때 16살이었던 김씨는 둘째 형과 함께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당시 해군에 복무하고 있던 셋째 형을 가까스로 만난 뒤 인천을 거쳐 부산에 도착했다.

이후 해군에 입대한 그는 제대한 뒤 지금은 사라진 하야리아 부대를 비롯해 군부대나 부두에서 근무했다.

월남전 때는 군수 물자를 보급수송선에 실어 전달하는 일을 하며 부산에 정착했다.

그는 "당시 집도 돈도 없어 '하꼬방(판잣집)'을 간신히 구했는데 집세를 내지 못해 결국 쫓겨났다. 결국 형이 얻어온 자재로 집을 간신히 지어 살았다."라며 "그렇게 터를 잡은 뒤 남한에 함께 넘어온 둘째, 셋째 형과 부산에 정착한 것"이라고 회상했다.

가족사진 설명하는 정복자씨

고향을 떠난 지 7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북한에 있을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온다.

특히 설날처럼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이면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가족들이 더욱 그립다.

피난 당시 상황이 여의찮아 김씨의 부모님과 나머지 형제들은 어쩔 수 없이 모두 북한에 남아야 했다.

그는 "조부모님과 부모님 기일 날을 모르다 보니 설날과 추석 때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대신해 마음을 표시하고 있다"며 "남한에 함께 온 형들의 가족과 모여 북쪽을 향해 차례를 지낸다"고 설명했다.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 설 맞이 고령 이산가족 위로 방문

그는 북한을 떠난 자신들 때문에 남은 가족들이 북한 정권의 표적이 돼 수용소에 끌려가는 등 고초를 겪지 않았을지 아직도 불안하다.

김씨는 "한번은 고향 집에 돌아가는 꿈을 꿨는데, 대문을 여니 가족들이 아무도 없더라"며 "꼭 나 때문에 모두 사라진 것 같아…"고 흐느끼며 말꼬리를 흐렸다.

김씨를 지켜보던 아내 정복자(85)씨는 "결혼하고 나서도 가족들이 떠오르는 슬픈 노래를 들으면 자주 울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자녀들과 조카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 때면 당부하는 말이 있다.

그는 "통일이 돼 이북에 갈 수 있다면 나 때문에 힘들었을 친척들을 꼭 찾아 보답해달라고 이야기한다"며 "한 번이라도 고향에 가보면 좋을 텐데 이제는 나이가 많아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자식들을 키우느라 제대로 끼니조차 챙기지 못했을 어머니에게 밥 한 끼라도 대접했어야 했다"며 "꿈속에서라도 뵙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는 이날 설을 앞두고 이산가족을 찾아 명절선물 등을 전달하며 위로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이외에도 1세대 남북 이산가족들의 고령화에 따라 유전자를 확보하고 이산가족의 사진과 글을 남기는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psj1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