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한반도도 '돌아온 트럼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관세나 방위비 분담금 협상보다 북한 문제가 먼저 부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일인 지난 20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에 대해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는 표현을 썼고, 23일 방송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스마트 가이"(smart guy·똑똑한 남자)로 평가하며 그에게 연락을 취할 것이라고 확언했다.
트럼프의 '북한 핵보유국' 언급은 북핵의 실체를 가감 없이 인정하는 그의 인식을 보여준다.
북한이 2006년 첫 핵실험을 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북한을 절대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시종 강조해왔다. 그것은 물론 1차적으로는 핵무기 개발 및 보유가 국제법상 허용된 미·중·러·영·프 등 5대 '공인 핵클럽'에 북한을 넣을 수 없다는 취지다.
그러나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말에는 북한을 핵 보유가 인정된 5개 공인 핵보유국(nuclear state) 밖의 '비공인 핵보유국(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일원으로도 부르고 싶지 않다는 인식이 투영돼 있었다고 기자는 생각하는데, 트럼프는 북한이 '비공인 핵보유국'이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의 '북한 핵보유국' 발언은 실패한 북핵 외교 30년사를 돌이켜 보게 만든다.
한미동맹과 미국의 핵우산이 있기에 한국 외교는 북핵 해결을 위해 노력은 했지만 '다 걸기' 하진 않았다.
정권 바뀔 때마다 극과 극을 오가는 대북정책 속에 제재도, 외교도 '끝'을 보지 않았고, '한반도 비핵화' 또는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유지하는 데 안주해왔다고 기자는 생각한다.
기존 외교의 공식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같은 한국 정부, 그리고 역대 미국 정부의 '정신승리법'을 존중할 뜻이 없어 보인다.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무신경하게 언급한 그의 머릿속에는 있는 그대로의 북핵 상황이 자리할 뿐인 듯하다.
그는 중앙정보국(CIA)이 평가한 '제품'(북한 핵탄두 및 ICBM 등)의 성능과 수량, 자신이 그 '제품' 중 어느 것을 얼마를 주고 '구매'할지 검토할 것이다.
그리고 '일부만 사지는 않겠다'는 식이었던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노딜'(합의 불발) 때 그의 태도가 유지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미국을 최우선시하겠다"고 취임사에서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협상 전략 검토 과정에서 동맹국인 한국의 안보상 이해를 얼마나 반영할지 미지수다.
머지않아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방문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과 만나 북핵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지난 30년과는 다른 결기로 북핵 문제에 대해 협의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비핵화' 목표·원칙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진다면 '한반도 비핵화'의 취지는 남북 모두 핵무기를 갖거나 두지 않는다는 것이며 '북한 비핵화 포기'는 곧 '한국의 비핵화 포기'와 연결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