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물 확인·추락 방지 조치 적절했는지 의문…사고 후 연락조차 없어"
경찰, 국과수에 부검 의뢰…고용노동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조사 중
(영월=연합뉴스) 강태현 기자 = "어머니는 시멘트 공장에서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고 며칠째 집에도 못 들어가고 계세요. 가족들 상심이 커서 올해는 설을 쇠지도 못할 것 같아요. 아버지가 작업 중 돌아가셨는데도 사측은 지금까지 연락 한번 없네요."
강원 영월 한 시멘트 공장에서 60대 근로자가 작업 중 시멘트 분진에 휩쓸려 추락해 숨진 가운데 유족 측이 사고 예방 조치가 미흡했다고 지적하며 사측의 사과와 경찰·노동 당국의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25일 경찰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지난 18일 오전 9시 40분께 영월 한 시멘트 공장에서 시멘트를 운반하는 버킷 엘리베이터 교체 준비 작업 중이던 이창희(62) 씨가 하부 케이싱 문짝에서 쏟아진 시멘트 분진 더미에 휩쓸려 27m 아래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씨는 심정지 상태에서 충북 제천 한 종합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사고 목격자이자 현장에서 이씨와 함께 근무해온 동료 A씨 등에 따르면 당시 사고는 시멘트 원료를 운반하는 버킷 엘리베이터 교체를 위해 이씨가 산소절단기로 하부 케이싱 절단 작업을 하는 도중에 발생했다. 쉽게 말하면 시멘트사일로로 통하는 문짝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변을 당했다.
A씨는 "원료 운반구를 교체하려면 시멘트사일로 내부에 쌓여 있는 시멘트를 모두 제거한 뒤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고 당일 오후 1시에 시멘트를 빨아들이는 청소차가 오기로 했었다"며 "우리는 청소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볼트로 고정해둔 문짝을 뜯어내야 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시멘트 분진이 쏟아지면서 문짝이 튕겨 나왔다"고 기억했다.
사고 당일 공장에는 원청과 도급계약을 맺은 하청업체에서 수년간 작업을 이어온 이씨 등 직원 5명이 출근했고, 이들은 안전 작업허가서를 작성한 뒤 각자 업무 위치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다 순식간에 '펑' 소리와 함께 문짝이 튕겨 나왔고, 이씨와 또 다른 동료 B씨가 시멘트 분진에 휩쓸렸다.
다행히 B씨는 한 손으로 안전난간을 붙잡으면서 추락을 피했지만, 이씨는 튕긴 문짝에 직접적으로 부딪치면서 시멘트 더미와 함께 바닥 아래로 곧장 추락해 변을 당했다.
20년 가까이 시멘트 공장을 누비며 기계 설비·용접 등 작업을 해온 A씨는 "보통은 문짝을 뜯더라도 쏟아질 정도로 많은 양의 시멘트가 남아 있지 않은데 오랫동안 직업에 몸담고 있으면서 그런 장면은 난생처음 목격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유족 측은 사측의 사고 예방 조치가 적절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고인의 아들 이재현(41) 씨는 "시멘트사일로 내부에 남아 있는 시멘트의 양과 상태를 미리 확인하고 작업을 지시한 건지, 미리 확인했음에도 어느 공간을 통해 시멘트 더미가 들어온 건지 의문스럽다"며 "절단 작업도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진행이 된 건지 의구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유족과 동료들은 작업장에 안전난간은 있었지만, 추락을 막아줄 발끝막이판이 설치돼 있지 않았던 점을 근거로 안전 조치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족들은 작업 중 사망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원청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조차 받지 못했다며 분통했다.
이씨는 "명확한 사고였고 주변에서 일을 하던 분들도 있었기 때문에 사측에서 저희에게 연락하거나 장례식장 조문이라도 올 줄 알았는데 아무런 대응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공사장에서 아버지는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근무해오셨는데도 사고 이후 사과 한마디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어느 곳에서도 명확한 설명이 없어 답답하다"며 "사고 경위에 대한 신속한 수사는 물론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노동 당국은 사고 원인과 함께 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사고 이후 영월경찰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이씨 부검을 의뢰하는 한편 조만간 강원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할 방침이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원청 관계자는 "조사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taet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