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뉴] 일타강사마저 흥분…부정선거 싸움 끝낼 해법은 이것

연합뉴스 2025-01-25 07:00:08

소설 '가스등'서 유래한 가스라이팅…트럼프 선동으로 학술 용어로

2002년 대선서 김대업, 이회창 아들 병역의혹 제기로 대선 판도 좌우

승자독식 구조 타파하면 음모론 불식과 지역감정 해소에 기여할 것

한국사 일타강사 전한길도 부정선거 의혹 제기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영국 패트릭 해밀턴의 소설 '가스등'(Gas light)에서 유래한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 지금의 심리학 용어처럼 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트럼프는 정치 기반을 다질 목적으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출생지 의혹을 제기하는 보수 극우세력인 '버서'(birther)의 일원으로 가세했다. 버서의 주장은 오바마가 아버지 나라인 케냐에서 태어나 헌법상 대선 출마 자격이 없다는 것으로, 그들은 음모론이 허위로 드러났는데도 "기록이 위조됐다" 등 또 다른 가짜뉴스를 퍼트렸다.

언론이 "미국 우주선이 달에 가지 않았다는 얘기"라고 하자 트럼프는 "언론이 민주당과 짜고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고 받아쳤다. 트럼프의 음모론은 부정선거로 한발 더 나아갔다. 2016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초반 "기술적 문제 이상"의 부정행위가 저질러졌다고 주장해 재미를 본 트럼프는 2020년 대선에서 연임에 실패하자 "거대한 부정행위가 발견됐다" 등 각종 가짜뉴스를 뿌려 의사당 폭동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

이회창 병역비리 공방 벌이는 홍준표와 김대업

2002년 한국 대선은 정치 선동꾼의 가스라이팅이 선거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친 대표적 사례다. 그해 5월 육군 의정 부사관 출신인 김대업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아들 정연 씨의 병역면제 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병적기록을 변조, 파기했다고 끈질기게 주장하고 병적기록과 함께 녹음테이프를 또 다른 증거라고 내밀었다.

김대업이 일으킨 '병풍'(兵風)으로 이 후보의 지지율은 10%포인트가량 떨어졌다. 검찰은 정연 씨의 병적기록이 위, 변조됐거나 파기된 사실이 없고 김대업의 테이프도 위조된 것이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 후보의 차남도 불법으로 병역면제를 받았다는 인터넷 매체의 가짜뉴스가 추가로 나오면서 이 후보에게 치명타가 됐다.

최근 확산 일로인 부정선거 논란도 트럼프, 김대업의 거짓 선동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설마 저런 직업의 사람이 거짓말을 하겠느냐'는 사회적 고정관념과 '상대를 속여서라도 원하는 걸 쟁취해야 한다'는 지지자들의 권력욕구 등 가스라이팅의 전형적 기제가 작동한다는 점에서다.

부정선거 주장하는 여권 지지자들

이 와중에 한국사 1타 강사로 불리는 전한길(55)씨가 윤 대통령의 계엄령 발동을 옹호하며 부정선거 의혹에 동조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전 씨는 선관위가 국정원 조사에 비협조적인 점 등을 부정의 정황으로 거론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증거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단언컨대 전 씨가 선거 감시에 직접 참여했더라면 선관위와 언론을 비리의 한묶음으로 싸잡아 공격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선거에 여야 각 정당과 교사, 공무원, 은행 직원 등 수만명이 참여해 사전투표부터 수개표 및 결과 입력까지 모든 과정을 감시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술이 최첨단을 달린다 해도 여러 검증 단계를 거쳐야 하는 수개표와 검표 과정에서 사람의 눈을 속인다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선관위가 어떤 반박 자료를 내놓아도 유권자들이 이를 100% 신뢰할 것 같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가스라이팅 정치의 악순환을 끊는 해법은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를 바꿔 승자독식 구조를 깨트리는 것이 그중 하나다. '선거에서 이기면 좋고 져도 크게 손해 볼 것 없는' 권력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망국적 지역감정이 점차 해소되고 국민이 좌우로 갈려 악다구니 쓰며 싸우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