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푸틴, 트럼프 발언 '허상 불과' 판단"…유리한 전황도 배경
우크라 지정학 중요성 고려…"세계질서 재편할 '얄타 2.0' 포석" 분석도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연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해 강경론을 쏟아내지만 정작 상대방인 푸틴 대통령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푸틴 대통령의 입장에서 우크라이나는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국가안보를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지정학적 가치를 지닌 데다 이미 전황도 러시아에 기울어져 있어 시간이 갈수록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시도는 어깨를 으쓱하는 정도의 반응을 끌어내는 데 그쳤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둘러싼 줄다리기를 대하는 러시아의 태도를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한 직후부터 거듭 푸틴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취임 당일인 20일에는 푸틴 대통령이 합의하지 않음으로써 러시아를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이튿날엔 기자회견에서 종전 협상에 나오지 않으면 추가 제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22일에도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곧 협상하지 않으면 조만간 높은 수준의 세금, 관세, 제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이에 대한 직접적 반응 없이 2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화상회담을 가졌다. 그는 공개된 영상에서 시 주석을 향해 "친애하는 친구"라 인사하기도 했다.
이어 23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어떠한 새로운 요소도 보이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WSJ은 "푸틴 대통령의 지휘부 입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이 허상에 불과하다고 볼 만한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전시 경제의 상황과 우크라이나 전선의 전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추가 제재도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배경으로 꼽힌다.
러시아는 전쟁 발발 이후 70만 가까운 병력을 잃은 것으로 추산되지만, 여전히 전방으로의 병력 보충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적어도 1년 정도는 전쟁을 유지할 여력이 있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전선도 꾸준히 전진시키는 데 성공해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0% 가까이가 러시아의 수중에 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을 촉구하면서도 미국이 직접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을 하는 데에는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를 전체적으로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은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보여주기'에 가깝다는 것이 푸틴 대통령의 결론으로, 이에 보다 실질적인 제안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바실리 카신 모스크바 고등경제대학교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장은 "우리가 인플레이션과 불균형 등을 겪고 있지만 공세를 중단해야 할 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라며 "우리는 요구사항을 밀어붙일 만한 위치에 있으며, 우크라이나군의 붕괴가 계속된다면 상대방도 우리에게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정치 컨설턴트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련의 발언이 정치 게임의 일부가 여길 뿐,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그는 협상이 빠르게 이뤄질 것이란 환상을 품고 있지도 않다"고 전했다.
물론 경제 제재가 러시아에 큰 압력이 되겠지만, 우크라이나의 안보·전략적 중요성이 더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서방의 동진'으로 규정해 온 푸틴 대통령의 입장에서 이번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체제 수립의 서막이던 얄타 회담과 같이 지정학적 질서의 전면 개편이라는 결과로 마무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휴전 조건으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의 지배권 인정 등을 거듭 주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스타노바야는 "당연히 푸틴 대통령도 전쟁을 멈추길 바라지만, 전적으로 러시아가 제시한 조건에 따라 그렇게 되길 바란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은 '얄타 2.0' 회담 테이블에 서방을 앉히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WSJ은 분석가들 사이에서 트럼프 당선인 역시 이런 푸틴의 입장을 고려할 때 빠른 해법 도출이 어렵다고 보고 '장기전'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제재를 언급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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