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과 분노'에서 3차례 만남까지…트럼프-김정은 '브로맨스'

연합뉴스 2025-01-24 15:00:13

트럼프 1기 초기 험악 설전 주고받다 2018년 초부터 관계 급진전

2018년 싱가포르서 만난 북한 김정은과 미국 트럼프

(워싱턴=연합뉴스) 박성민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직접 정상외교를 재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그간 어떻게 형성돼 왔는지에 관심이 모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5 미국 대선 과정에 김 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해왔고, 이를 자신의 외교 업적 중 하나로 내세워왔다.

지난해 7월 자신이 공식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우리가 재집권하면 나는 그(김정은)와 잘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해 12월 시사주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언급하며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면 그건 매우 (전선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며 "난 김정은을 안다. 김정은과 매우 잘 지낸다. 난 아마 그가 제대로 상대한 유일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는 취임 당일인 지난 20일에도 백악관 집무실에서 "난 김정은과 매우 우호적이었고, 그는 나를 좋아했다. 나는 그를 좋아했고 매우 잘 지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공개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미 정상외교를 다시 시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은 김 위원장과 개인적으로 이어온 친분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인식이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브로맨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1기 때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처음부터 관계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출범 초기 거친 수사를 동원해 김 위원장을 맹렬히 비난했다.

미국 대선 기간이던 2016년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했을 때는 "이 미치광이(maniac)가 더는 핵을 갖고 장난을 못 치게 해야 한다"고 했고, 취임 이후인 2017년 8월에는 "북한이 더는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 게 최선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껏 전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강력한 경고장을 날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에도 "로켓맨(김정은 지칭)은 자신과 그의 정권에 대해 '자살 작전'(a suicide mission)을 하고 있다"(2017년 9월)고 비난했으며, 김 위원장을 '병든 강아지'(sick puppy·2017년 11월)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늙다리 미치광이', '노망난 늙은이', '불망나니', '깡패' 등 맹비난으로 응수했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서로에게 핵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면서 거친 수사로 위협전을 펼쳤다.

김 위원장이 2018년 새해 신년사에서 "미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것,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현 엑스·X)에 올린 글에서 "나한테도 핵 단추가 있고, 그의 것보다 훨씬 크고 강력하다는 점을 누가 그에게 알려줬으면 좋겠다. 게다가 내 핵 단추는 작동한다"고 받아쳤다.

두 사람의 비난성 설전은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관계가 해빙기에 접어들면서 중단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급격히 가까워진 것은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이 계기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확정 후 김 위원장에 대해 "매우 많이 열려 있고 매우 훌륭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듬해인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뒤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우호적으로 흘렀다.

같은 해 6월 판문점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3자가 함께 만난 것을 끝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아직 대면하지 못했지만, 두 사람은 트럼프 1기 행정부 기간 27통에 이르는 친서를 주고받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러브레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에도 김 위원장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특별한 언급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집권 2기 취임 이후에는 김 위원장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핵보유세력)"라고 부르며 그에 걸맞은 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는 뜻까지 내비친 상황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회동 의지에 김 위원장이 호응할지는 불투명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정한 것처럼 북한의 핵 능력이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보다 진화했고, 러시아와의 밀착으로 인해 수년간 이어져 온 대북 제재를 비켜나갈 수 있는 길도 마련돼 있어서다.

미 국가정보위원회(NIC) 북한담당관을 지낸 시드니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지난 22일 CSIS 팟캐스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직접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도 앞으로의 길은 김정은의 손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min22@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