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워치] 대통령의 금리인하 요구

연합뉴스 2025-01-24 13:00:13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연준이 실수하고 있다. 연준은 너무 긴축적이다. 난 연준이 미쳤다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기 임기 중이던 2018년 10월 11일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로 뉴욕증시의 주가가 폭락하자 제롬 파월 의장이 이끄는 연준을 맹비난했다. 당시 뉴욕증시는 미국 경제의 호황에 힘입어 초장기 활황세를 보이다 연준이 저금리의 점진적 정상화를 위해 금리를 올리자 주가 상승세가 꺾였다. 그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던 트럼프 대통령은 주가 상승을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며 선거운동에 활용하고 있었는데 연준이 금리 인상으로 찬물을 끼얹었던 셈이다. 곧이어 미 언론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연준 의장의 해임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줄지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 [EPA=연합뉴스]

"정치적인 고려는 연준의 금융정책 결정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연준의 독립성은 중앙은행이 일하는 데 필수적이다"

파월 미 연준 의장은 그해 12월 19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뒤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상 중단 압박을 일축하며 이런 답을 내놓았다. 향후 기준금리 조정의 속도와 경로는 오직 경제지표를 보고 판단할 뿐이라는 '데이터 디펜던트(Data Dependent)' 방침도 강조했다.

어느 나라나 정치권은 경제적 치적을 쌓기 위해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을 선호한다. 금리 인하뿐 아니라 중앙은행의 발권력도 항상 사용하고 싶은 유혹의 대상이다. 하지만 '물가 안정'이 설립 목적인 중앙은행은 인플레와의 전쟁이 소명인 탓에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정치권의 이런 요구에 맞서 싸워야 한다. 중앙은행이 기본적으로 '매파(금리 인상 선호) 본색'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리 인하의 유혹은 달콤하고 빠져들기 쉽지만 반대로 금리 인상은 고통스럽고 거센 저항에 부딪히기 마련이어서 쉬운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초반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려 물가 상승의 불길을 잡은 '인플레 파이터'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은 온갖 시위와 살해 위협에 시달려 권총을 갖고 다닐 지경이었다고 한다.

파월 연준 의장. [AP=연합뉴스]

국내에서도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의 역사가 있다. 요즘은 경제부총리 등 정부 관계자들이 엄한 오해를 살까 우려해 기준금리에 대한 언급조차 자제하는 관행이 대체로 굳어졌지만, 지난해 6월엔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환경이 되고 있다"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은 한은이 정부 정책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며 금리 인하를 주장해 한은과 묘한 갈등을 빚었다.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기업 구조조정과 신성장동력 투자를 위해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한국판 양적완화'를 주장했다가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재선에 성공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제롬 의장을 만나 금리 인하를 요구하겠다고 했다. 그는 연준에 강력한 입장을 낼 것이라며 연준이 그런 요구에 응할 것이라고 했다. 이미 트럼프 1기 때 경험했던 '데자뷔'지만, 더욱 강한 '미국 이익 우선주의'로 돌아온 트럼프의 압박이 시작된다면 금융시장의 충격과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기에 걱정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조정을 둘러싼 통화정책은 연준이 자국 경기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결정하겠지만, 조화롭고 슬기로운 결정을 통해 세계 경제와 글로벌 금융시장의 안정에도 기여하기를 바란다.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