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2021년 1월 21일 공식 출범했다. 공수처 개념이 등장한 것은 1996년이다. 당시 참여연대가 고위공직자의 부패행위 전담 수사기관을 도입하자는 내용의 입법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면서 공수처 논의가 점화됐다. 공수처 설립은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였다. 공수처법은 2019년 12월 30일 여야의 극한 대립 속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법제화 이후에도 공수처장 후보자 추천을 둘러싼 여야 간 갈등으로 설립까지 1년 이상 시간을 소모했다.
공수처 탄생에는 수사·기소권을 독점한 검찰권력을 견제한다는 의미가 있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강행했던 검경 수사권 조정과 함께 '검찰개혁'의 양대 축이었다. 공수처가 대법원장과 대법관, 검찰총장,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기소권을 보유하면서 검찰의 독점체제를 허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수처는 출범하자마자 사건 접수가 쇄도했고, 검사·수사관 공모에도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공수처의 '흥행'은 여기까지였다. 이후 잇단 헛발질 끝에 이듬해인 2022년 5월 16일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은 그동안 미숙한 수사력을 인정하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공수처는 출범 직후부터 윤석열 대통령과 '악연'으로 얽혔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이 유력 야당후보로 떠오른 시기에 4차례나 수사 대상에 올렸다. 2021년 6월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 교사 사건 수사 방해 의혹 등 2건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했다. 9월에는 '고발 사주' 의혹으로, 11월엔 '판사 사찰 문건 작성' 의혹으로 수사선상에 올렸다. 하지만 공수처는 사건 관련성을 밝히지 못하고 불기소 처분했다. 고발 사주 의혹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이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고 3차례 청구한 구속영장은 번번이 기각됐다. 무분별한 통신자료 수집으로 '사찰' 논란까지 빚었다.
공수처가 어제 윤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수괴) 등 혐의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공수처는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체포·구속했지만, 제대로 된 조서 1장 남기지 못한 채 수사를 마쳤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을 대면 조사한 것은 체포 직후 단 1차례뿐이다. 강제구인·현장조사 시도는 모두 불발로 끝났다. 이로써 공수처는 수사역량 부족을 또다시 노출하면서 '빈손 공수처(空手處)'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 수사의 위법성을 주장하며 진술을 거부하고 조사에 협조하지 않은 탓이 크지만, 공수처가 '보여주기식' 수사에 치중해 내실을 챙기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 수사 내내 '내란죄 수사권' 논란에 시달렸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 등 주요 피의자 조사나 윤 대통령과의 대질신문 시도에 나서지 못한 전략 부재를 드러냈다. 윤 대통령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을 재판 관할인 서울중앙지법이 아닌 서울서부지법에 청구하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경찰에 체포영장 집행 권한을 떠넘기려 했다가 경찰의 거부로 철회하는 혼선을 빚기도 했다. 게다가 윤 대통령에게 변호인을 제외하고 접견 금지, 서신 수·발신 금지 결정을 내린 것도 소환 불응에 대한 보복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향후 '공수처 무용론'이 제기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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