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인사들, 美 정·관·재계 아우르는 폭넓은 '취임식 외교'
기업인들이 다진 인맥, 對美 소통 창구 복원 가교될 지 주목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을 계기로 트럼프 2기 행정부 안팎에 포진한 국내 재계 인사들의 인맥도 그 면면을 드러냈다.
비상계엄 등의 여파로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대미(對美) 창구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 정·관·재계를 넘나드는 국내 기업인들의 네트워크가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소통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이번 '취임식 외교'에서 가장 돋보인 인사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다.
정 회장이 보유한 트럼프 인맥의 출발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이자 2기 행정부 실세로 언급되는 트럼프 주니어다.
정 회장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는 종교적 공통 분모를 기반으로 트럼프 주니어와 2년 넘게 깊이 교감해왔다.
정 회장은 지난해 12월 중순 트럼프 주니어의 초대로 트럼프 대통령 자택이 있는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5박 6일간 머무르며 당시 트럼프 당선인과 따로 만나 긴 시간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정 회장과 트럼프 주니어와의 이른바 '브로맨스'(연애에 버금가는 남성 간의 깊은 우애)는 이번 '취임식 외교'에서도 빛을 발했다.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부인 한지희 여사와 함께 뉴욕을 거쳐 워싱턴DC에 입성한 정 회장은 취임식 당일인 지난 20일까지 트럼프 주니어와 상당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공식·비공식 일정을 소화했다. 트럼프 주니어와 식사도 두차례 했다고 한다.
지난 18일 한 비공식 리셉션에서 정 회장이 트럼프 주니어의 어깨를 팔을 건 채로 한 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은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정 회장은 워싱턴DC에서의 2박 3일간 트럼프 주니어의 소개로 재계 유력 인사는 물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핵심 인사들을 광범위하게 접촉했다.
여기에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공식적인 2인자인 JD 밴스 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 앤드루 퍼거슨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 지명자 등이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공지능(AI) 및 암호화폐 정책 책임자로 임명한 데이비드 삭스와의 만남도 이뤄졌다.
정 회장은 또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유력 인사가 주최한 다양한 모임에 참석해 실명을 공개하기 어려운 정부 최고위 인사들과 두루 교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 외에 국내 유수의 기업인들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을 재미(在美) 인맥 다지기의 기회로 삼았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취임식 전후로 4박 5일간 워싱턴DC에 체류하며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 지명자, 더그 버검 내무부 장관 지명자,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만났다.
김 부회장은 부친인 김승연 회장 때부터 이어진 미국 공화당 인사들과의 친분으로 취임식에 초청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친선협회의 추천으로 취임식에 참석하고자 워싱턴DC를 찾은 허영인 SPC 회장과 우오현 SM그룹 회장 등도 개별적으로 미국 상·하원의원 및 트럼프 2기 행정부 인사와 회동했다.
이밖에 한국 쿠팡의 모회사이자 미국 뉴욕 증시 상장사인 쿠팡Inc의 김범석 이사회 의장도 현지 기업인 자격으로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지명자,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 지명자 등과 안면을 튼 사실이 국내에 전해졌다. 미국 기업인 중에서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앤디 제시 아마존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등과 조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재계에선 정 회장을 필두로 한 국내 기업인들의 네트워킹 범위가 재계를 넘어 정·관계까지 뻗어나간 점을 주목하는 분위기다.
다양한 채널로 다져놓은 이들의 인맥이 앞으로 한미 정부 간 소통 창구 복원에 보탬이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불안정한 국내 정치 상황으로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대미 창구가 사실상 단절된 상황에서 기업인들의 노력으로 민간 부문의 소통이 먼저 이뤄진 것"이라며 "이제 국익 차원에서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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