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21조원 과징금 폭탄' 언급하며 "일종의 과세" 맹폭
애플·메타·구글 조사 3월 말 결론…EU '빅테크 칼날' 시험대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거대 기술기업을 겨냥한 유럽연합(EU)의 고강도 규제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며 또 한 번 갈등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화상 연설에서 EU가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의 빅테크를 규제하면서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을 언급한 뒤 "매우 불만이 크다"라고 말했다. 또 EU의 과징금 부과가 "일종의 세금"이라고 비판했다.
EU는 전 세계적으로 거대 기술 기업에 대한 가장 엄격한 규제를 시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빅테크 대부분이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어 주요 타깃도 미국 기업이 되곤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도 이 지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애플은 지난해 3월 EU 음악 스트리밍 앱 시장에서 소비자가 더 저렴한 구독 서비스를 이용할 기회를 차단하는 '불공정 관행'을 일삼았다는 이유로 전 세계 매출의 0.5%에 해당하는 18억 4천만 유로(약 2조 7천억원)를 과징금으로 부과받았다.
같은 해 9월에는 일명 '아일랜드 체납 과징금' 불복 소송에서 EU 집행위에 패소해 천문학적 액수의 과징금을 토해내야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이 소송을 사례로 들었다.
이 사건은 애플이 2016년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에서 받은 조세 혜택이 불법 보조금에 해당한다면서 체납 세금 130억 유로(약 19조원)와 이자를 합쳐 143억 유로(약 21조원) 회수 명령을 내린 집행위 결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이다. 8년간 법정 공방 끝에 유럽사법재판소(ECJ)는 집행위 손을 들어줬다.
올해는 미국 빅테크를 겨냥한 '한층 독한' 과징금 결정이 줄줄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2019년 취임한 이후 기존 반독점법에 더해 온라인 플랫폼을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위한 법이 본격적인 집행 국면에 돌입해서다.
디지털시장법(DMA)과 디지털서비스법(DSA)이 대표작이다. 두 가지 모두 기업 규모가 클 수록 더 엄격한 의무가 부여되며, 막대한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빅테크 갑질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DMA는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고자 애플·메타 등 7개 플랫폼 사업자를 '게이트 키퍼'로 지정, 특별 규제하는 법이다. 7개 중 5개 기업이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
위반 시 전 세계 매출의 최대 10%에 해당하는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고 법을 반복적으로 어겼다고 판단되면 과징금이 최대 20%까지 올라간다.
집행위는 지난해 3월 DMA 전면 시행 18일 만에 애플·메타·알파벳 등 3개 기업이 DMA의 5가지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의심된다며 조사에 착수했다.
이 가운데 메타·애플에 대해서는 이미 작년 6∼7월 DMA 위반에 해당한다는 잠정 결론을 발표한 상태다.
메타의 경우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이용자 중 서비스 이용료를 내지 않은 경우 광고 목적 데이터 수집에 사실상 강제 동의하도록 한 '비용지불 또는 정보수집 동의'(pay or consent) 모델을 문제 삼았다. 애플은 앱 개발자들이 대체 구매 방법을 알리는 것을 막는 앱스토어의 운영 방식이 DMA 잠정 위반이라고 봤다.
구글도 대체 앱 유도 방식 및 검색 엔진에서 구글 쇼핑·항공·호텔 등 자사 서비스를 우선 노출하는 행위 등에 대한 조사를 받고 있다.
애플·메타·알파벳의 DMA 조사 모두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조사 마감 시한은 3월 25일이다.
집행위 관계자는 여건에 따라 결정이 일부 늦춰질 수는 있지만, 그때까지 마무리 짓겠다는 "정치적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고 실세로 등극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소유한 엑스(X·옛 트위터) 역시 EU 규제망을 피해가지 못할 전망이다.
집행위는 2023년 12월부터 엑스를 상대로 DSA 위반 조사를 진행 중으로, 최근 머스크의 '정치간섭' 논란이 일면서 조사 범위가 확대됐다.
DSA 위반으로 결론 나면 연간 글로벌 매출의 최대 6%가 과징금으로 부과될 수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 불만을 토로하면서 EU가 '선도적' 규제로 자랑해온 DMA와 DSA가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일부 외신은 트럼프 대통령과 충돌 가능성을 우려해 EU가 조사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과징금을 부과하더라도 규모가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일부 있다.
그러나 경쟁법 수장인 테레사 리베라 EU 청정·공정·경쟁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지난 16일 조사 '일시중단'이나 '재검토'는 전혀 없었다고 전면 부인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무관하게 "제대로 된 법 적용"을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shi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