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 콘텐츠 차단" vs "디지털 서비스만 도태"
"올바른 놀이 문화·리터러시 교육 등 근본적 해결 먼저"
(서울=연합뉴스) 오인균 인턴기자 = "부적절한 콘텐츠가 유통되고 피해가 생긴 이후에 구제하는 것보다 빠르게 유통 통로를 막아주는 강력한 자율 규제가 필요합니다."(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게임 셧다운제가 실효성이 전혀 없어 폐지된 것처럼 호주의 청소년 SNS 금지 법안도 정책 효과가 없을 겁니다. 디지털 서비스만 도태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청소년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중독이 국경을 불문한 보편적인 문제가 되면서 여기저기서 규제가 고개를 들고 있다.
무분별하고 유해한 정보와 콘텐츠의 범람 속에 아직 미성숙한 청소년을 방치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세상에서 규제가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며 청소년들의 미디어 리터러시(매체 이해력)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지적도 맞서고 있다.
◇ 유해정보부터 딥페이크까지…청소년을 보호하라
전문가들은 플랫폼의 '유해 콘텐츠' 유통 책임이 커지면서 청소년 보호에 대한 공감대가 생겼다고 진단했다.
최근에는 딥페이크(허위 영상물) 성범죄에 10대 청소년이 연루된 수준이 심각한 것으로도 파악됐다. 딥페이크를 만드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지인의 SNS 사진과 성 착취물과 합성하고 이를 SNS 단체 대화방에 유포하는 식이다.
경찰청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검거한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 피의자 506명 중에서 10대가 411명으로 81.2%의 비중을 차지했다. 물론, 청소년 피해자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호주 의회는 부모가 동의해도 16세 미만의 SNS 이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세계 최초로 통과시켰다.
또 노르웨이는 SNS 이용 최소 연령을 15세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고, 인도네시아도 SNS 접근에 연령 제한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인스타그램은 지난해 청소년의 과도한 사용과 부적절한 콘텐츠 노출 등을 제한하기 위해 '10대 계정'을 도입했다. 18세 이하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이 정책은 미국과 호주를 비롯한 영미권을 시작으로 EU 지역을 거쳐 지난 22일에는 국내 적용이 시작됐다.
현재 한국에서는 만 14세 이상 청소년은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할 수 있는데, 이제 10대 계정 이용자는 비공개 계정으로 전환되며 팔로우한 사람하고만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부모의 관리 감독 기능이 도입돼 앱 이용 시간 역시 관리할 수 있고, 부모가 자녀들이 누구와 대화하는지 볼 수 있다. 폭력적이고 성적인 콘텐츠처럼 유해 콘텐츠 시청도 제한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24일 "우리나라는 청소년의 놀이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청소년들이 SNS에 빠져들기 쉽다"면서 "이를 통해 무분별한 정보를 수동적으로 습득하다 보면 잘못된 윤리관이나 왜곡된 가치관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이 자율 규제에 나설 유인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튜브 같은 콘텐츠 기업의 경우 자극적인 콘텐츠가 유통되어야 접속 수가 늘고 광고 매출이 오르기 때문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심각한 불법 콘텐츠가 판치면 기업의 신뢰를 잃고 지속성이 떨어질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 보면 유해 콘텐츠를 단속할 유인이 적다"면서 실효성 있는 법 적용을 촉구했다.
◇ 지나친 규제가 오히려 역효과…미디어 리터러시 교육해야
하지만 규제의 실효성을 두고 의문이 제기된다. 아무리 촘촘한 규제를 만들어도 우회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임기범 인공지능경영학회 이사는 "이메일 주소 하나면 계정을 만들 수 있지 않냐"면서 "구멍이 뻔히 보이는 상태에서 제재만 가하는 것은 명목만 있을 뿐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중요한 소통 수단인 SNS를 금지하면 재난재해 등 위급한 상황에서 실시간 대응을 하거나 도움을 구하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청소년들이 SNS에 '우울계', '자해계' 등의 해시태그로 메시지를 올리고 서로 교류하기도 하는데, SNS가 위험한 상황에 있는 청소년들을 발견해 구출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능이 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런가하면 정작 청소년 당사자의 목소리는 외면한다는 비판도 있다.
인스타그램을 메신저로 주로 사용한다는 김승호(18) 군은 "우리 의사는 묻지 않고 SNS 사용을 기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X(엑스·옛 트위터) 이용자 'ehs***'은 "청소년들이 무균실에서 자란다는 것은 어른들의 환상이고 청소년들이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간접 경험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썼다.
곽 교수는 "지나친 검열과 강압적인 규제는 단기적인 효과는 있겠지만 SNS에 대한 갈망과 욕구는 더 커져 장기적으로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도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임 이사는 SNS 금지에 대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면서 "SNS를 악용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청소년·부모·기업이 윤리적 책임 의식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청소년이 SNS에 흘러다니는 정보를 취사 선택하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과 문화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ku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