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결정 이후 이탈리아에서도 연정의 한 축인 극우 정당 동맹(Lega)을 중심으로 탈퇴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안사(ANSA), AFP 통신에 따르면 동맹 소속의 클라우디오 보르기 상원의원, 알베르토 바냐 하원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WHO 탈퇴 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WHO가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며 "1억유로(약 1천495억원)에 이르는 이탈리아의 기여금이 국민 건강 서비스, 미국과 프로젝트 등에 더 잘 쓰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두 의원은 연정의 다른 두 축인 이탈리아형제들(FdI), 전진이탈리아(FI)가 이 법안을 지지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이후 "도미노 효과가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강경 우파 성향의 이탈리아 연정은 상·하원 모두 과반 의석을 점하고 있다. 총리실 대변인은 이 법안과 관련해 아직 입장을 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최대 정당인 이탈리아형제들의 당대표이기도 하다.
야당은 WHO 탈퇴 움직임을 규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보건부 차관을 지낸 제1야당 민주당(PD) 소속 상원의원인 산드라 잠파는 "공중보건을 지키는 데 주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이러스와 질병은 국경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동맹의 WHO 탈퇴 법안 발의는 정치적 목적이 다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동맹은 연정을 구성한 이후 주요 지지층이 이탈리아형제들로 이동하며 지지율이 한 자릿수대로 추락했다.
이러한 지지율 하락 속에서 동맹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인프라 교통부 장관은 더 극우적인 노선을 부각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노선을 따르려는 모습이라고 AFP 통신은 분석했다.
멜로니 총리 역시 트럼프 대통령과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유럽 정상 중 유일하게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취임식을 마치고 나서 곧바로 WHO에서 미국이 탈퇴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말기인 2020년 7월에도 WHO에서 탈퇴했지만, 후임인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취임 당일인 2021년 1월 20일 이를 철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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