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지난해 2월 6일 정부는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천명 늘리는 계획을 발표했다. 2천명은 당시 의대 정원(3천58명)의 65.4%에 달했다. 의대 증원 규모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5년 이상 유지할 방침이라고 했다. 의대 교과과정 6년을 계산하면 2031년부터 매년 2천명씩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를 늘리겠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였다. 정부는 지역·필수 의료 위기의 주된 원인이 의사 부족에 있다면서 의대 증원을 추진했다. 이 때문에 촉발된 의정 갈등이 1년 가까이 지속됐고 그 와중에 올해 배출된 신규 의사 수가 평년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결과를 낳았다.
매년 1월 치러지는 의사 국가시험의 올해 합격자 269명은 지난해 3천45명의 8.8% 수준이다. 의사 국시를 봐야 하는 의대 본과 4년생들이 대다수 휴학하고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응시 대상 중 10%가량만 시험을 치렀다는데 그나마 합격률도 70.4%로 저조했다. 원서를 내고도 실기와 필기시험에 응하지 않은 학생들이 있어서다. 통상 의사 국시 합격률은 95% 안팎이다. 의정 갈등으로 걱정했던 의사 배출 '절벽'이 현실화한 것이다.
의정 갈등이 해결의 실마리를 못 찾으면서 의대 교육과 전공의 배출도 차질이 이어지고 있다. 각 대학이 지난해 휴학했던 의대생들을 상대로 올 1학기 복학 신청을 받고 있으나 아직은 복학 움직임이 미미하다. 서울대 의대 3∼4년생 70명 안팎이 1학기 개강 첫날 수업에 복귀했다는 소식이 있었으나 이것이 대규모 복학 움직임의 전조로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떠났던 전공의들을 상대로 올 상반기 전공의를 모집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사직 전공의의 2.2%(199명)만 모집에 응했다. 정부가 전공의 복귀를 독려하기 위해 여러 '당근책'을 제시했지만 그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달 10일 '사회 분야 주요 현안 해법회의'에서 내년도 의대 정원을 '원점에서 논의하겠다'는 정부 입장을 거듭 밝히면서 "의료에 헌신하기로 한 꿈을 잠시 접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전공의, 교육과 수업 문제로 고민했을 교수와 의대생 여러분들께도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부 최고위급 인사가 의료계에 사과 의사를 처음 표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정부가 밝힌 '원점 논의'가 정원 감축까지도 포함한다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회에서 밝히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 집행부가 새로 꾸려진 뒤 의협 회장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비공개 회동에서 '의료 사태 조속 해결'에 뜻을 모았다는 소식도 있었다. 사태 해결을 위한 어떤 실마리가 마련될 것 같은 분위기다.
의대 증원은 윤석열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중의 하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사태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사법당국의 내란 혐의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 과제를 추진할 동력을 사실상 상실한 것이나 진배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다면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각종 사회적 비용도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난다. '대대행 정부'의 한계만 탓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의료계도 의정 갈등에 지친 국민들 사이에 '이렇게 끝까지 가면 정말 어쩌겠다는 거냐?'라는 여론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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