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이탈리아 당국이 자국에서 체포된 리비아의 전쟁범죄 혐의자를 석연치 않은 이유로 석방해 국내외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당국은 절차상의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국제형사재판소(ICC)가 해명을 요구하고, 야당에서도 이를 강하게 문제 삼는 등 후폭풍이 거세다.
23일(현지시간) 안사(ANSA) 통신에 따르면 ICC는 전날 리비아의 고위 사법경찰 오사마 나짐(일명 알나스리)을 석방한 경위에 대해 이탈리아 당국에 해명을 요구했다.
ICC는 성명에서 "1월 21일, 법원에 통지나 협의 없이 알마스리가 석방돼 리비아로 돌아간 것으로 보도됐다"며 "법원은 취해진 조치에 대해 이탈리아 당국의 해명을 요청하고 있지만 아직 답변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ICC는 모든 회원국이 범죄 수사와 기소 과정에서 ICC와 전적으로 협력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상기시킨다"고 덧붙였다.
이탈리아 총리실과 법무부는 이 사안과 관련해 어떤 논평도 내놓지 않고 있다. 야권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 '비바 이탈리아'를 이끄는 마테오 렌치 전 총리는 "여러분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나뿐인가요. 아니면 이것이 위선적이고 부도덕한 정부의 민낯인가요"라고 비난했다.
야권은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직접 의회에 출석해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나짐은 전쟁 범죄와 반인륜적 범죄, 성폭행, 살인 혐의로 ICC가 국제 수배를 한 인물이다. 그는 리비아 사법경찰의 수장이자 트리폴리 인근 미티가 교도소의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구금된 이민자들을 노예처럼 학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나짐은 지난 19일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의 한 호텔에서 체포됐지만 이틀 뒤에 석방돼 리비아로 송환됐다.
현지 일간지 라스탐파에 따르면 검찰이 ICC가 발부한 영장을 근거로 체포하는 경우에는 카를로 노르디오 법무부 장관과 사전에 협의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아 절차상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로마 법원은 이에 근거해 "영장이 유효하기 위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체포영장을 무효로 하는 결정을 내렸다.
리비아로 돌아간 나짐은 그곳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 영상에는 지지자들이 나짐을 무동에 태우는 등 뜨겁게 환영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탈리아 정부가 리비아 정부와 밀접한 관계라는 점 때문에 단순한 절차상 실수가 아닐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리비아는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섬에서 가까워 내전과 빈곤을 피해 유럽행을 원하는 아프리카 이주민의 대표적 기항지로 꼽힌다.
반이민 성향의 멜로니 총리는 경제 지원을 대가로 출항 단속을 요청하는 등 리비아 정부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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