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만큼 장엄한 중국의 지옥 편력기 '목련구모권선희문'

연합뉴스 2025-01-24 00:00:21

목련구모권선희문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붓다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인 대목건련(목련)은 유복한 가정에 부나복이라는 이름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부나복의 아버지 부상은 주변에 덕을 베풀고 인품이 훌륭해 늘 스님과 도사들을 융숭하게 대접하며 가르침을 청해 들었다.

부상은 세상을 떠나며 가족들에게 소식(素食·고기 없는 식사)하고 스님과 도사들을 공양하라고 유언을 남기지만, 남편을 잃은 유씨 부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기와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한다.

스님과 도사들이 부상의 유언을 지키라고 타이르자 유씨 부인은 도리어 개고기를 넣은 만두를 이들에게 보내 몰래 먹이려 하는 등 만행을 저지른다.

유씨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부나복은 어머니가 생전 죄를 지었음을 알고 붓다를 찾아가 "돌아가신 어머님이 신선이 되도록 해달라"고 읍소한다.

그러자 붓다는 지옥에 간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면 먼저 참선을 배우라며 부나복에게 대목건련이라는 법명을 내리고 수행하도록 한다.

목련은 지옥을 헤맨 끝에 지옥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아비지옥에서 어머니와 재회한다. 목련의 지극한 효심과 공양에 힘입어 어머니는 결국 신선이 된다.

최근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 출간된 중국 명나라 정지진(1518∼1595)의 고전 희곡 '목련구모권선희문'의 줄거리다.

이 책은 생전에 악행을 벌인 어머니를 위해 아들인 목련이 불법(佛法)을 익혀 지옥으로 가서 어머니를 구한다는 '목련구모'(目連救母) 설화를 담았다.

이 설화는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서 유래했으며 이후 중국으로 넘어와 내용에 점차 살이 더해져 수많은 이야기가 지어졌다. '목련구모권선희문'은 이를 희곡으로 옮긴 글이다.

한국을 비롯해 불교가 전파된 동아시아 나라들에선 해마다 음력 7월 보름날 '우란분재'(盂蘭盆齋) 또는 '우란분회'(盂蘭盆會)라는 이름의 행사가 열린다. 이는 목련이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스님들에게 '우란분'이라는 그릇에 담은 음식을 공양한 데서 유래했다.

기원인 목련구모 설화는 불교에서 시작했으나 이 책에는 중국의 영향으로 옥황상제와 염라대왕이 등장하는 등 도교의 세계관도 함께 담겨 배경과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한다.

이 책은 세속, 천상, 지옥 등 불교와 도교에서 생각하는 내세가 등장해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을 연상케 한다. 특히 주요 무대 중 한 곳인 지옥은 화염으로 뒤덮인 산, 범이 위협하는 호표관 등으로 다채롭게 묘사된다.

전체 내용을 공연하려면 3일이 걸릴 정도로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책을 완독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을유문화사. 이정재 옮김. 상권 576쪽, 하권 580쪽.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