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하고 투박한 하드보일드 스릴러…영화 '브로큰'

연합뉴스 2025-01-24 00:00:18

동생 죽음 진실 좇는 전직 조직원 이야기…하정우 주연

영화 '브로큰' 속 한 장면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한때 범죄 조직에 몸담았던 민태(하정우 분)는 손을 씻은 뒤에도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남자다.

월급을 떼이면 사장을 찾아가 칼로 위협해 돈을 받아내고, 자기 신경을 건드리는 말을 하는 사람은 코를 깨놓곤 한다.

폭력이 유일한 소통 수단인 것 같은 그도 동생 석태 앞에선 약해진다. 막노동으로 번 돈 모두를 생활비에 보태라며 제수 문영(유다인)에게 쥐여줄 정도다.

어느 날 밤 "사고를 친 것 같다"는 메시지를 남긴 동생이 시신으로 돌아오고 문영까지 사라지면서 불같은 민태의 성정에 기름을 붓는다. 눈이 뒤집힌 그는 쇠 파이프 하나만 든 채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김진황 감독의 영화 '브로큰'은 동생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려는 민태의 여정을 그린 스릴러다. 그간 쫓고 쫓기는 역할이나 극한의 상황에 놓인 인물을 여러 차례 소화해 '고난 전문 배우'라 불리는 하정우가 주인공 민태 역을 맡았다.

영화 '브로큰' 속 한 장면

민태 역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맨몸으로 방해 세력과 싸워가며 동생이 죽은 그날의 진실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

단순한 추적극으로 전개되던 영화는 베스트셀러 작가 호령(김남길)이 나타난 뒤 미스터리물로 급선회한다. 호령의 소설에 석태와 문영을 본뜬 듯한 남녀 캐릭터가 등장하고, 여자가 남자의 폭력에 지쳐 그를 살해하는 내용이 담겼다는 사실을 민태가 눈치채면서 흐름이 바뀐다.

소설에서 힌트를 찾아 문영이 숨은 곳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보란 듯이 깨고, 민태의 단순 무식한 추적은 계속된다. 문영의 행방을 아는 사람을 협박하고 때리는 게 그의 방식이다.

이런 민태의 캐릭터 때문에 장르 영화라면 으레 지니는 서스펜스를 이 영화에선 좀처럼 느끼기 어렵다. 실마리가 하나씩 풀렸을 때 오는 쾌감 또한 전무하다시피 하다. 호령이 쓴 소설에 범죄를 내다본 내용이 담겼다는 설정은 군더더기처럼 보이고, 호령이라는 인물도 맥거핀으로만 소모되는 느낌이다.

영화 '브로큰' 속 한 장면

대신 후반부로 갈수록 하드보일드·누아르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검은 양복을 입은 민태가 부둣가에서 조직폭력배와 패싸움을 벌이는 액션 장면이 대표적이다. 상대에게 쇠 파이프와 꽁꽁 언 생선을 휘두르고 칼을 맞으면서도 적을 제압하는 '날 것'의 액션은 이런 장르에 목말랐던 관객에겐 반가움을 안길 듯하다. 그러나 간단한 스토리를 먼 길을 돌고 돌아 보여줘 피로감을 안긴 탓인지 공을 들인 만큼 강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한다.

석태가 영화에서 '죽어도 싼' 남자로 나오는 만큼, 민태의 복수심은 당위성도 얻기 어렵다. 결국 관객은 민태에게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가 약자를 포함한 여러 인물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광경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캐릭터를 좀 더 세공하는 한편 장르를 단순화하고 스토리에 깊이를 더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월 5일 개봉. 99분.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 '브로큰' 속 한 장면

ramb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