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흑묘백묘' 실용주의로 중도공략…조기대선 겨냥 우클릭

연합뉴스 2025-01-23 18:00:08

기업 성장 등 민간 주도 '공정성장론' 제시…지도자 이미지 강조

"정치 보복 안 돼" 통합 메시지…'일극 체제' 지적에는 "안정적 당 운영"

질문에 답변하는 이재명 대표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3일 실용주의 노선을 거듭 강조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과 조기 대선 가능성에 대비한 '우클릭' 외연 확장 시도로 해석된다.

이 대표는 전날 당 최고위원회의에 이어 이날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꺼냈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었던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사용하면서 유명해진 전통 속담으로, 이 대표 표현대로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실용주의 철학을 담고 있다.

이 대표는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며 "탈이념·탈진영의 현실적 실용주의가 위기 극복과 성장 발전의 동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성장 발전의 공간을 만들어 성장의 기회도, 결과도 함께 나누는 공정 성장이야말로 실현가능한 양극화 완화와 지속성장의 길"이라면서 '공정 성장'이라는 자신의 성장 담론도 소개했다.

그러면서 "일자리는 기업이 만들고 기업의 성장발전이 곧 국가 경제의 발전"이라며 '민간 주도·정부 지원' 시대로의 전환, 주식시장 선진화·활성화, 신성장 동력 창출 등 성장의 청사진을 함께 제시했다.

'탈이념·탈진영'과 '성장 발전' 등의 구호로 국민의 실제 삶이 나아지는 데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밝힘으로써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뿐 아니라 중도층, 나아가 보수 성향 표심까지 아우르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이 대표는 비상계엄 사태를 고리로 한 대여(對與) 공세보다는, 이같은 비전 제시에 기자회견 모두발언 시간을 대부분 할애했다.

이는 탄핵 정국 속에서도 당 지지율이 국민의힘에 역전되는 등 정국 주도권을 확실히 쥐지 못하는 흐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잇단 국무위원 탄핵을 비롯한 민주당의 강경 일변도 행보가 중도층에게 반감을 주고 결국 보수·극우 세력을 결집하게 한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대표는 여권과 선명한 대비를 앞세우기보다는, 비상계엄 이후 어려워진 경제 상황을 타개하려고 애쓰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을 해법으로 삼은 셈이다.

질문에 답변하는 이재명 대표

이 대표는 "대통령이든 집권 세력이든 집권하고 나면 나라 전체를 책임져야 한다"며 계엄 사태로 말미암은 혼란을 계기로 대립과 갈등의 정치를 통합과 포용의 정치로 전환하자고 역설했다.

그는 진영 대립이 반복되는 원인인 '정치 보복'을 두고도 "상대를 찍어놓고 1년 내내 탈탈 터는 정치 보복은 당연히 하면 안 된다"며 "정치 보복이라는 단어조차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미국에 새로 들어선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서도 나름의 입장을 내놓으며 수권 정당으로서 신뢰감을 얻으려는 데 공을 들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언급한 데 대해 "미국 정부의 정리된 입장이 아닌 것 같다"며 "북한을 설득하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함께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시장과 기업 중심의 성장 동력 확보, 한미 동맹 등 외교·안보 이슈에 탈이념적 메시지를 발신한 것을 놓고 당 안팎에서는 사실상 '조기 대선 모드'를 가동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친명(친이재명)계가 장악한 당의 권력 구조상 뚜렷한 대권 경쟁자가 없는 상황이지만,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 비명(비이재명)계가 '이재명 일극 체제'를 비판하자 이에 대응하는 차원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 대표는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정당에서 이견이 없는 상태라면 일종의 '조직'과 같아질 것"이라며 "다양한 목소리가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일극 체제'라고 할지, 당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할지는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를 것"이라며 비명계의 비판에는 선을 그었다.

kj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