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세련되고 올바른 표현-③

연합뉴스 2025-01-23 15:00:08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강성곤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제대로 사과하는 법

'마이크에 들킨 국회의원 속마음?'

"관료 비난 아닌 채찍질 차원"

"관료들을 비난한 게 아니라 좀 더 열심히 하자는 채찍질 차원에서 얘기한 것이다. 답답한 심정이 와전된 것이다."

뒷말로 한 비난도 성에 안 차서 이젠 급기야 등짝에 물리적 위해인 채찍질을 가하겠단다. 차원은 또 뭔가? 그다지 어려운 수준의 말은 아니었던 것으로 아는데 말이다.

채찍질이 아니라 '독려', '다독임'이 적절하다. 차원은 '의미'로 바꾸는 것이 더 어울린다.

"관료 비난 아닌, 독려(다독임) 의미"

"관료들을 비난하고자 한 게 아니라 독려, 다독임의 의미로 허심탄회하게 나눈 대화가 본의 아니게 많은 분에게 심려를 끼쳤다. 특히 마음 상했을 공무원 여러분에게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 정도 해야 사과다. 이런 사과도 있었다.

"금요일에 큰소리를 낸 것은 피감기관 증인 선서를 한 사람으로서 잘못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걸 핑계로 국회가 또 공전하면 어떡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당시 청와대 모 수석비서관의 말이다.

사과 표현에 앞서 말을 잘하는 필요 조건 중 하나는 낱말 뜻에 대한 명확한 이해다. 그걸 바탕으로 때, 장소, 상황을 고려해 적확·적실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사과하러 왔다는 이가 상대를 향해 '핑계'가 뭔가. 핑계는 상대가 불리한 입장임을 전제로 한다. 구차하게 변명하거나 사실을 감추려고 결이 다른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대상을 향해 쓰는 것이다.

여기선 '빌미'를 써야 옳았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탈이 나는 이유나 원인으로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다.

"지난 금요일 불쑥 큰 소리로 화를 내 물의를 빚은 저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유구무언입니다. 바라건대, 혹여 이번 일이 빌미가 돼 국회가 다시 공전되거나 파행을 빚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송구하고 죄송합니다. 반성하고 성찰하겠습니다."

사과의 3원칙이 있다.

'구체적으로, 가능한 한 빨리, 그리고 진심을 담아서'다. 그리고 표현에 있어서는 전제를 달아서는 곤란하다.

"언짢으셨다면" "마음 상하셨다면" "미흡하게 처신한 게 있다면" "관행에 따랐다 하더라도" 등의 표현은 외려 불쾌감을 돋우며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역효과다.

아울러 얄팍하고 교묘한 책임 회피성 발언도 화를 부른다. '마음의 책임', '축제가 아닌 현상' 등 2022년 이태원 참사 때 공직자가 한 발언 등은 국민들 가슴에 불을 질렀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사과를 보라.

그는 여성 기자를 향해 스위티(sweetie, 달콤하다는 원뜻에서 알 수 있듯 상호 친밀성이 전제돼야 하므로, 잘 알지 못하는 여성을 향해서는 무례한 표현에 속하는 호칭)라는 표현을 썼다.

곧바로 "'스위티'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사과합니다. 저의 나쁜 말버릇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이번 실수에 대해 매우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제게 만회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적절한 사과의 본보기다.

◇ 이름 부르기

명찰에 적힌 종업원의 이름을 불러달라는 식당에 간 적이 있다.

손님이 왕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식당이 손님에게 부담을 주는 것도 문제다. 적당한 호칭을 못 찾는다고 해서 손님 더러 종업원의 이름표를 주시하고 그 이름을 정확히 부르란 말인가.

이에 대해 종업원의 의견은 혹시 들어보았는지 궁금하다.

과도한 요구요, 무례나 다름없다.

은행, 병원, 카페 등 직원들이 이름표를 부착하는 다른 기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경우는 관공서, 병원, 법정 등이다. 그곳은 원치 않는 자신의 이름이 건조하게 맴돌며 대개 을(乙)이 된 듯한 경험을 안기기 일쑤다.

이름을 부르거나 상대방에게 꼭 맞는 호칭을 찾는 것보다 맥락에 따른 상황어를 개발하는 게 합리적이며 국제적인 기준에도 부합한다.

'실례합니다'의 영어 표현인 'excuse me'는 '내가 당신을 부르는 상황을 용서하라'는 의미다. 독일어 Entschuldigen Sie bitte/ Entschuldigung, 프랑스어 je m'excuse/excusez-moi, 일본어 すみません/ごめんください도 비슷하다.

우리에겐 '여기요', '저기요'가 있다.

"여기 있는 저 좀 봐주시겠어요?"

"저기, 주문 좀 하려고 하는데요"를 센스 있게 축약한 준수한 상황어다. 주로 젊은 층이 자주 쓰면서 사회적 언어에 기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 코로나19(COVID-19) 읽기

코로나 초창기, '코로나19'의 '19'를 [십꾸]로 읽느냐 [일구]로 발음하느냐 논란이 있었다.

말하자면 숫자냐 기호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는 그 생성·제작 주체의 뜻에 일단 따르는 게 옳다. 나름대로 고민을 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게 적절치 않거나 설득력을 잃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최적의 방법으로 정리된다.

그 기준은 어감·편의성·줄임 효과다. 이걸 기제로 집단 지성이 작동한다고 해석된다. 십 단위의 날짜 사건만 보자.

'4.19(사일구)/5.16(오일육)/ 8.15(팔일오)/10.26(십이육)'은 원래 숫자의 의미를 무시하고 기호화해 단 단위로 끊어 읽은 경우다. 이런 게 더 많다.

반면 '6.10(육십)/12.12(십이십이)'는 어떤가.

제대로 된 수의 고유명을 존중했다. 같은 해 벌어진 사건이라도 '10.26'은 십 이십육[십이심뉵]이라고 안 한다.

왜? 입에 붙지 않는 데다 음절 수도 하나 더 늘어나기에 그렇다.

그래서 [시비륙]이 안착했을 터다.

12.12는 [시비일리]로 하든 [시비시비]로 하든 글자 수가 같지만, [시비시비]가 어감이 당기고 더 와닿아 굳어졌다.

'콘서트7080(칠공팔공)', '2030(이공삼공)세대', '84(팔사)학번', '98(구팔)학번', '10(일공)학번' '19(일구)학번' 등 이런 예도 발음의 편의를 좇아 기호화한 읽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승강기의 '4' 대신에 'F' 표기도 그렇다. '4 ⇒ 사 ⇒ 死'가 싫은 이유이잖나!

1층 밑은 왜 반듯하고 합리적인 0(zero)나 under가 아니고, 굳이 B(Basement, 기초)를 들여와 B1/B2/B3 방식으로 쓰는가.

바로 약속과 인정을 바탕으로 한 기호의 힘이다.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전 건국대·숙명여대·중앙대·한양대 겸임교수. ▲ 전 정부언론공동외래어심의위원회 위원. ▲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현 가천대 특임교수.

*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