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무데뽀 작전도 작전이 될 수 있을까?

연합뉴스 2025-01-23 12:00:15

한 농구팀 감독의 작전이 입방아에 오릅니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전술이 신통치가 않아요. 그런 게 있긴 한가 싶기도 합니다. 농구를 잘 알고 좋아하는 팬들은 "우린 지금 딱 두 가지가 안 돼. 뭔지 알아. 공격하고 수비야"라고 선수들에게 핏대 세우는 그가 우습게만 보입니다. 아마 급하게 작전타임을 부르고선 한 말이라고 하죠. "자, 공격 잘하고 응, 알지. 수비는 좀 더 달라붙고 말이야"라고 감독은 덧붙이곤 합니다. 펄펄 나는 선수들이 아니라면 이 팀은 늘 필패 대패 압패 할 것만 같습니다.

배고팠던 시절, TV 앞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했던 권투. 복싱보다는 권투, 권투 했더랬습니다. 청코너에 배치된 선수에게 코치는 침 튀기며 작전을 말합니다. "맞으면 안 된다. 알았지. 잘 피하란 말이야. 파이팅". 종이 울리며 라운드가 시작됩니다. 선수가 말을 안 들었나 봅니다. 상대 선수의 강펀치 한 방에 다운입니다. 링 밖 코치는 애가 타서 반복합니다.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다행히 비틀비틀 일어나 다음 라운드를 맞습니다. 쉬는 시간에 코치는 아차 싶었던지 말을 보탭니다. "잘 피하기만 하면 안 된다. 잘 때려야 한다. 펀치를 날리라고 응, 알았지?" 선수는 안타깝게도 더 버티지 못하고 K.O.패로 물러납니다. 코치는 라커룸으로 선수와 함께 퇴장하면서 불만을 터뜨립니다. "왜 그렇게 말을 안 들어. 잘 피하고 잘 때리라니까".

조총

두 감독의 지시는 작전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함이 있습니다. 전부를 다 말하여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하나마나한 말만 하여 작전 없음을 실토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모르긴 해도 작전이라 하면 지역방어냐 맨투맨이냐, 얼굴 위주 방어냐 복부 방어냐, 어퍼컷 공격이냐 스트레이트 공격이냐, 상대와 거리 좁히기냐 거리 두기냐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무데뽀(無鐵砲. 무철포)로 보입니다. 신중함이나 대책이 없이 함부로 덤비는 사람이나 그러한 태도를 속되게 이른다고 사전은 이를 풀이합니다.

이 낱말에는 일본의 중요한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규슈(九州) 남단에 다네가시마가 있습니다. 종자도(種子島)입니다. 씨앗섬이라 할까요. 대항해 시대이던 1543년 이 섬에 표착한 중국 배 한 척에 포르투갈인이 한 명 타고 있었습니다. 그가 일본 땅에 전해준 것이 조총(鳥銃)이라고도 불렸던 철포(てっぽう)입니다. 이 철포에 열광한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연합 세력이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賴) 세력을 1575년 나가시노 전투(長篠の戰い)에서 물리칩니다. 철포를 개량한 신무기로 무장한 연합군에 다케다 세력은 창칼로, 즉 무데뽀(철포 없음)로 맞서 참패했던 것입니다. 무데뽀는 그래서 작전 없음을 고백하는 단어로 이해됩니다. 그런 막무가내 작전이 더러 쓸모가 있을 경우가 있겠으나, 그것은 영화 ≪넘버3≫에 나오는 불사파에게나 해당하는 극히 희소한 이야기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한겨레신문, [유레카] 다네가시마 / 이근영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534072.html

2. 도올TV, 임진왜란 얼마나 아십니까 1 - 도올 김용옥, 한명기 교수 - https://www.youtube.com/watch?v=AYYhAv3LITM&list=PLrsCvvY6H0pXH2d3pWmGqgkB8YBzB-2t3

3. 중앙일보, [우리말 바루기] 무대포(?) 정신 - https://www.joongang.co.kr/article/16174732

4. 충청투데이(https://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21616)

5. 네이버 고려대한국어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