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교육은 실패나 실수를 감수하더라도 이 세계에 새로 온 이들에게 행동할 기회를 열어주는 일이며, 정치는 그것이 가능하도록 타협하는 것이다."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으로 '악의 평범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교육을 통한 민주사회 형성'에도 많은 통찰을 남겼다.
최근 발간된 '한나 아렌트와 교육'(살림터)은 미국 퀴니피악대 모르데하이 고든 교수 등 10명의 교육학자가 아렌트의 교육 이론과 정치 철학을 분석한 9편의 논문을 엮은 책이다.
아렌트는 교육을 새로운 세대에게 세계를 소개하고, 그들이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돕는 일이라 정의했다. 아울러 정치는 이러한 자유와 책임을 조율하며 세계의 공통성을 형성하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저자들은 아렌트의 이런 사상을 바탕으로, 현대의 교육과 정치가 본질적인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현재의 교육 제도에서는 학생에게 변화와 혁신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육자를 만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전체주의가 창궐하는 현대의 민주국가들에서 교육은 반민주적 사상에 저항하는 시민을 양성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기존 권위에 수긍하는 수동적 시민들만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책은 아렌트의 사상을 기반으로 민주적 사회의 형성 과정에서 시민 교육의 역할에 대한 깊은 논의도 이어간다.
저자들은 아렌트의 관점에서 교육이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수준을 넘어, 시민으로서 비판적 사고와 능동적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다문화주의의 수용'과 '인종 간 긴장의 완화', '비판적 시민 양성' 등의 교육 과제를 제시한다.
책은 아렌트에 대한 찬양으로만 일관하지는 않는다. 저자들은 아렌트 사상에 내재한 한계를 한목소리로 꼬집는다.
그들은 정치와 교육이 상호 연관돼 있지만 결국 서로 분리돼야 한다는 아렌트의 입장에 보완할 부분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교육과 정치의 상호작용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사유의 틀을 제공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정치와 교육의 분리가 자칫 시민 사회의 정치 무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조나영 옮김. 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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