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오래 연구한 문인 권오운은 『시인들이 결딴낸 우리말』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출판사 문학수첩은 지은이를 우리말의 달인이라고 소개하며 아름다운 시 속에서 일그러진 우리말을 꼬집어 내어 수선했다고 설명합니다.
[열무꽃]을 본 것처럼 쓴 시들이 많았다며 작가는 혀를 찹니다. 열무는 무의 일종이 아니라 다 자라지 않은 어린 무일 뿐이기에 꽃이 필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꽃이 피는 무는 장다리무뿐이라고 친절하게 덧붙입니다.
시뿐 아니라 가요에 쓰여서 널리 퍼진 [민들레 홀씨]도 우리말 법정에 세웠습니다. 꽃이 피었으면 씨앗이지, 웬 홀씨냐고 꾸짖습니다. 홀씨는 식물이 무성생식을 하기 위해 형성하는 생식세포, 즉 포자(胞子)입니다. 포자는 씨앗이 아닙니다. 민들레는 꽃식물(반대말은 민꽃식물)이므로 홀씨가 아니라 씨앗으로 번식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작가는 부연합니다.
[벚꽃나무] 지칭도 잘못됐다고 지적합니다. 벚나무면 됐지, 벚꽃나무라니요. 소나무를 누가 송화(松花)나무라 하며 귤나무를 누가 귤꽃나무라 하느냐는 반문입니다. 동백나무면 동백나무지, 동백꽃나무가 아니란 거지요. 말멋이 있다고 봤을까요, 말맛이 좋다고 봤을까요. 벚나무를 벚꽃나무로 대체한 시가 적지 않았습니다.
성긴 눈은 있어도 [성긴 눈발]은 없다는 견해도 내놓습니다. '성기다'는 '성글다'와 같은 말로 '물건의 사이가 뜨다'를 뜻하고 눈발은 눈이 힘차게 내려 줄이 죽죽 져 보이는 상태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못생긴 미남처럼 애초 어울릴 수 없습니다. 작은 거인 같은 비유적 표현하고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여러 시에 쓰인 명사 [토막잠]도 바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짧은 틈을 타서 불편하게 자는 잠은 쪽잠이라며 이를 제일 나은 대체어로 제시합니다. 사전은 '잠깐씩 자는 잠'이라고 토막잠을 풀이해 놓긴 했습니다.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잠든 척하는 사람은 깨우기 어렵습니다. 잠든 척하는 이들을 드물지 않게 봅니다. 누구나 다 보고 있는 자명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권오운, 『시인들이 결딴낸 우리말』, 문학수첩, 2018
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