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사골 곰국은 사골(소의 다리뼈와 관절 부위)을 오랜 시간 끓여 만든 국물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소를 도축하고 남은 뼈를 활용해 국물을 우려냈다.
뼈를 활용한 국물은 영양가 높은 대중적인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곰국에는 다양한 효능이 함유돼 있어 전통적으로 건강식으로 여겨져 왔다.
곰국은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을 비롯한 동서양에서 애용된 음식이며 문화적인 배경이 깊다.
미국의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Make America Healthy Again)라는 슬로건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식품 산업화를 통해 생겨난 음식이 미국을 병들게 하고 있다며 초가공식품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런 다음 초가공식품을 미국의 식탁에서 퇴출하겠다고 했다. 케네디 주니어는 "우리에겐 유독성 수프에서 헤엄치는 한 세대의 아이들이 있다"며 초가공식품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미 국립보건원(NIH)은 미국인이 하루에 섭취하는 열량의 58%를 초가공식품으로 섭취한다고 발표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초가공식품을 많이 섭취하면 심장 질환, 정신 건강 장애, 제2형 당뇨병 등 32가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사골 곰국은 이처럼 문제 많은 초가공식품이 아닌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으로 주목받는 보양식이다.
약선에서 소의 사골은 그 맛이 달며 성질은 따뜻하고 독이 없다고 했다. 또한, 인체의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해줘 관절통과 골다공증도 예방한다고 보고 있다.
뼈의 아교질은 피부의 탄력성을 보충해 피부를 아름답게 한다. 단 사골 곰국은 독주(도수가 높은 술)나 시금치와는 함께 먹지 않는 것이 약선의 원칙이다.
필자에게 사골 곰국은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상징한다. 또한 가족을 하나로 묶는 따뜻한 유대이기도 했다. 한겨울 칼바람이 뺨을 에이는 날이면 어머니는 부엌에서 가마솥에 불을 지펴 곰국을 끓이셨다.
사골 뼈가 물속에서 천천히 끓어오르며 하얀 김을 내뿜을 때마다 그 김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실려 집 안을 가득 메웠다. 추운 바람 속에서 얼었던 몸뿐 아니라 마음마저 녹여주는 따뜻한 곰국은 어머니의 손끝에서 마법처럼 탄생했다.
그 국물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고 안전한 쉼터였다. 한여름에도 어머니의 곰국은 늘 변함없이 우리를 감싸줬다. 뽀얀 국물 한 그릇 속에는 가족을 위한 정성과 사랑이 담겨 있었고, 그 맛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하게 한다.
손자병법 '허실의 장'(虛實의 章)은 전쟁에서의 유동성과 전략적 기민함을 다룬다.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고 강점을 피하며 자신의 위치를 유리하게 조정하는 원칙이다. 사골 곰국 끓이기에 비유해본다.
손자는 적의 허(虛·약점)를 노리라고 했다. 즉 약점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준비과정의 철저함을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사골 곰국을 만들 때 사골을 제대로 손질하지 않거나 준비를 소홀히 하면 국물 맛이 탁해지거나 깊은 맛과 효능이 떨어진다.
마치 상대방의 허점을 공략하듯 준비 과정에서 냉수에 사골의 핏물을 충분히 빼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 다음에 실(實·강점)을 피하라고 했다. 곰국을 끓이는 과정에서 불의 세기가 지나치게 강하면 타거나 효능이 추출되지 않는다. 이처럼 상대의 강점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우회하듯 곰국 끓이기에서는 적절한 불 조절로 문제를 피해야 한다.
강한 불보다 약불로 천천히 끓여야 깊은 맛과 효능을 우려낼 수 있다.
이어 손자는 변화와 유동성을 활용하라고 했다. 곰국을 끓일 때 한 번에 끝내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 끓이는 과정을 반복한다. 처음에는 약한 맛이 나지만 시간을 통해 점점 깊고 풍부한 국물이 완성된다.
마치 전쟁에서 유동적으로 상황을 조정하며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는 것과 같다. 곰국을 끓이는 과정에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단계적으로 최적의 결과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손자는 자신의 강점을 숨기고 상대를 유인하라고 했다. 곰국에서 깊고 진한 맛을 내기 위해 시간을 들여야 한다. 서두르면 맛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는다. 사골의 진가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천천히 끓이며 깊은 맛을 유도해야 한다.
상대를 속이고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과 유사하다. 곰국은 서두르지 않고 철저히 준비해 강점인 효능이 최대한 발휘될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손자는 상대의 상태를 탐지하라고 했다. 곰국을 끓이다 보면 국물 상태를 계속 확인하며 적절한 시점에 기름을 걷어내며 불의 세기를 조절해야 한다. 상대의 상태를 끊임없이 파악하며 적절히 대응하는 허실의 원리를 반영한다.
상대의 상황을 관찰하고 그것에 맞게 전략을 조정해야 한다.
이렇듯 사골 곰국 끓이기는 손자병법 허실의 장에서 강조한 "상대의 허와 실을 활용하며 변화와 기민함으로 승리를 도모하라"는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요리와 전쟁에서도 핵심은 준비, 인내, 유동성, 지혜로운 대응 등이 중요하다.
한국 사람들은 예부터 밥상에 국이 없으면 뭔가 허전하고 밥을 먹은 것 같지 않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 밥상에는 항상 국과 밥이 함께 올랐다.
그래서 국에다 밥을 말아 먹는 탕반(湯飯) 음식도 발달하였다. 탕반에는 재료와 마는 방법, 국물 붓는 방법, 얹는 고명에 따라 30∼40여 가지가 있으나 그중 대표적인 것이 곰국이다.
조선 중종 때 발간된 훈몽자회(1527)에 '탕은 국에 비해 국물이 진한 데다 공이 많이 들어가는 진귀한 음식'이라고 나와 있다. 그중 곰국은 높은 영양가와 구수한 맛으로 인해 임금님 수라상인 12첩 반상에 오를 정도로 인기 있는 보양식이었다.
또한 시의전서에도 '고음'(膏飮)에 관한 설명이 있다. 내용인즉슨 '다리뼈, 사태, 도가니 등을 큰 솥에 물을 많이 붓고 은근한 불로 푹 고아야 맛이 진하고 뽀얗다'고 했다.
이처럼 곰국은 우수한 영양 보충으로 체력을 증진하기 때문에 사철 보양 음식으로 임금님도 즐겨 드셨던 궁중음식이다.
서양에서는 곰국을 '본 브로스(Bone Broth)'라고 한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먹었다. 뼈를 오래 끓여 만든 국물은 영양이 풍부해 일반 서민부터 귀족에 이르기까지 널리 소비됐다고 한다.
19세기 이후 본 브로스는 서양 요리에서 수프와 소스의 기본 육수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웰빙 트렌드와 함께 본 브로스가 건강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키토제닉 다이어트와 같은 저탄수화물 식단의 일부로 활용하며 자연식품으로서 염증 완화, 피부 건강, 소화 개선 등 여러 건강 효과를 강조한다.
본 브로스는 이제 단순한 육수를 넘어 동서양인 모두가 애용하는 건강 웰빙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전통 음식이 됐다.
과거에는 소스와 요리의 바탕으로 쓰였으나 현대에는 건강과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독립적인 식품이 됐다.
맑고 고소한 본 브로스가 서양의 오랜 요리 문화와 현대인의 건강을 향한 열망이 담겨 있다고 한다. 우리네 사골 곰국도 현대에 들어 건강 웰빙을 위한 음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K-푸드 열풍과 함께 '미니멀리즘'과 '힐링' 트렌드 속에서 다시 주목받는 사골 곰국은 또 하나의 K-컬처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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