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외계인이 침공하면 힘을 합해야∼

연합뉴스 2025-01-22 07:00:10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인생은 일상(프란츠 카프카)입니다. 그날 밤 국가폭력 이후 여전히 진행 중인 일련의 국가위기 속에 잃고 있는 것은 하루하루 있어야 할 신경안정제 같은 웃음입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여 예전 유명 TV코미디프로그램명이 '웃으면 복이 와요'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일소일소 일노일로(一笑一少 一怒一老)도 틀림없는 말인 줄로 압니다. 웃으면 젊어지고 화내면 늙어집니다. 웃으면 또 복이 옵니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란 '웃음의 문으로 온갖 복이 들어온다는 뜻'일 테지요.

정치인 유머를 떠올립니다. 그들에게 유머는 필수입니다. 대화하고 설득하고 타협하는 데 유머가 없다면 어떨까요? 너무 팍팍할 겁니다. 무언가를 이루려고 악마적 힘과도 관계하며 권력투쟁 전장에서 격렬한 전투를 치르다 보면 유머가 더욱 절실해집니다. 지켜보는 국민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말 같지 않은 말로 '썩소'와 '웃픈' 현실을 제공하는 정치인은 많아도, 촌철살인의 유머를 구사하는 정치인은 보이지 않아 씁쓸한 하루하루입니다. 게다가 지금 같은 시기에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은 로또 1등 당첨을 바라는 것만큼이나 철없고 무모하며 허망하다는 게 더 슬프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웃어 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그의 성경책이 사용되었다는 에이브러햄 링컨. 그의 유머는 압권입니다. 선거전이 치열합니다. 경쟁하는 후보가 합동유세에서 큰소리합니다. "저 자(링컨)는 두 얼굴 가진 이중인격(two-faced)자입니다". 상대가 쓴 단어를 활용하여 링컨은 받아칩니다. "내가 두 얼굴을 가졌다면, 이 못난 얼굴로 이렇게 다니겠습니까?". 미국 남북전쟁 기간에 교회에 나온 두 여자가 대화를 나눕니다. A가 "남부연합 대통령 데이비스가 이길 겁니다" 하니까 B가 이유를 묻습니다. A는 "매일 기도를 하니까요"라고 합니다. B는 의아해하며 되묻습니다. "(북부 이해를 대변하는 연방 대통령) 링컨도 매일 기도를 하잖아요"라고. A의 답이 걸작입니다. "기도를 하긴 하지요. 그런데 하느님은 이기게 해달라는 링컨의 말을 조크로 아시는 게 문제지요". 링컨은 유별나게 농담을 즐겼습니다.

미국 워싱턴DC 링컨기념관에서 본 워싱턴기념탑

하나 된 독일의 초대 총리를 지내고 앙겔라 메르켈을 발탁한 것으로 유명한 헬무트 콜은 허무개그의 대주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너스레를 떱니다. "안데르센 동화집의 저자를 깜빡 잊었다"고 말이지요. 안데르센 동화집을 그림 형제가 썼을 리는 없습니다. 위조지폐범들이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는 혼잣말처럼 구시렁댑니다. "자식들, 만들려면 진짜지폐를 만들어야지, 그래야 안 잡힐 거 아니냐. 멍청하긴…" 코끼리 같은 풍채와 육중한 카리스마가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비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했을 겁니다.

한국 정치인으로는 누가 있을까요. 살아생전, 일솜씨도 탁월했지만 '말발'도 압도적으로 우월했다는 평을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회찬입니다. "50년 동안 한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 먹어서 판이 새까맣게 됐습니다. 이제 판을 갈아야 합니다"라고 TV 토론에서 일갈한 그의 어록은 "대한민국 법정에서 만인이 평등합니까? 만명(1만명)만 평등한 것 아닙니까"로 이어졌습니다. "아니, 동네파출소가 생긴다고 하니까 그 동네 폭력배들이 싫어하는 것과 똑같은 거죠.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도 그가 남긴 말입니다. "우리나라랑 일본이랑 사이가 안 좋아도 외계인이 침공하면 힘을 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는 와닿아도 너무 와닿는 말입니다. 지금 외계인은 누구이고 우리나라는 누구이며 일본은 누구일까요?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예로 든 유머 내용 일부는 취지를 보전하는 범위 안에서 윤색했습니다.)

1. Paul F. Boller, Jr, 『PRESIDENTIAL ANECDOTES』, OXFORD UNIVERSITY PRESS, 1996

2. 손창용, 『좋아하는 거장의 문장 하나쯤』, 2020 (서울도서관 전자도서관 전자책)

3. 경향신문, 촌철살인의 교과서 노회찬…그가 남긴 말들 - https://www.khan.co.kr/article/201807231242011

4. 스포츠경향, '촌철살인' 노회찬이 남긴 정치 어록 13 - https://sports.khan.co.kr/article/201807231615003

5. 네이버 블로그 쓰레기 박사의 쓰레기 이야기(자원순환사회연구소), 링컨의 유머와 일화 - https://blog.naver.com/waterheat/220232193348

6.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