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국민 저항권

연합뉴스 2025-01-21 17:00:13

구호 외치는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

(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저항권의 사전적 의미는 "법치국가에서 기본 질서를 침해하는 국가의 공권력 행사에 대하여 주권자인 국민이 최후의 비상수단으로 행할 수 있는 권리"(표준국어대사전)다. 통상 국민 저항권은 정부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거나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때 국민이 이에 저항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말한다. 이런 저항권의 개념은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의 주장에서 기원한다.

로크는 '통치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이란 저서에서 저항권의 개념을 설명했다. 사람들은 자연 상태에서 자유롭고 평등하지만,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를 구성하는 계약을 맺고, 이 계약에 따라 일부 자유를 정부에 양도하고 정부는 이 자유를 보호할 의무를 진다. 정부는 국민의 동의를 받고 권력을 행사하되, 이 권력은 오직 개인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하는 데만 사용해야 한다. 로크는 정부가 이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국민이 정부에 대해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현대 들어 저항권은 일부 국가에서 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됐다. 독일 헌법은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침해하려는 시도에 대해 국민이 저항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부분 국가의 헌법이나 법률에는 저항권 관련 명문 규정이 없다. 저항권은 실정법에는 없지만 자연법적으로 존재하는 권리로 간주하는 것이 통설이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고 밝힌 것이 국민의 저항권을 인정하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경찰 앞에서 구호 외치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

'12·3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 국민 저항권이 자주 언급된다. 국회에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조배숙 의원이 법사위 전체 회의에서 "(헌법재판소가) 헌법을 위반하면 국민이 저항권을 발동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했던 윤 대통령 지지자들도 이런 주장을 숨기지 않았다. 당시 이들이 법원 건물과 사무실 기물을 부수며 "이젠 전쟁이야. 국민 저항권이야"라고 소리치던 모습이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다. 서부지법 난동 사태 당일 저녁 전광훈 목사는 '전국 주일 연합예배'에서 "국민 저항권이 발동됐기 때문에 우리가 윤 대통령을 구치소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저항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적 기본질서가 공권력에 의해 침해됐을 때 이를 회복하기 위해 국민이 마지막 수단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다. 지금이 그런 상황인가. 국회의 윤 대통령 탄핵소추 결정과 헌재의 탄핵 심판 심리, 사법당국의 내란 혐의 수사, 법원의 영장 발부 등 일련의 과정이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오히려 비상계엄이 계획대로 실행돼 국회가 마비되고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면 국민 저항권이 행사돼야 한다. 법원에 난입해 3시간 동안 '무법천지'를 만든 이들이 국민 저항권을 운운하니 어이없는 노릇이다.

bond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