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불법이민자 유입차단과 국외추방을 공약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취임하자마자 미 당국의 이민 사전인터뷰 예약 애플리케이션 가동이 중단됐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은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20일부터 서류가 미비한 외국인들이 사전 정보를 제공하고 남서부 9개 입국항에서 (인터뷰) 예약을 할 수 있도록 했던 '시비피 원'(CBP One) 앱의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존 예약도 취소됐다"고 덧붙였다.
시비피 원은 미국행을 원하는 이민희망자들의 입국·망명 신청을 질서 있게 처리하기 위해 조 바이든 전 행정부에서 고안한 애플리케이션이다.
미국 남부 국경에 가까운 멕시코 북부 국경도시 등에서 이 앱에 접속하면 합법적 절차에 따라 미국에 이민할 수 있다. 하루 처리하는 신청서의 숫자가 제한돼 있어서 시비피 원을 통해 미국에 입국하는 사람의 수는 한 달에 3만명가량이다.
대신 무단으로 국경을 넘는 이민자들에게는 망명을 차단하면서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 불법입국을 시도하는 사례가 크게 줄었다고 미 정부 당국자들은 밝혀왔다.
하지만 미등록 이민에 강경한 태도를 보여온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강경파는 이러한 제도를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통상적으로는 입국하지 못할 이들까지 받아들여, 법원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수년간 미국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건 잘못이라고 봐서다.
트럼프 행정부는 법원 결정 전까지 이민·망명 신청자들을 멕시코에 머물게 하는 '이민자 보호 프로토콜'(MPP)을 복원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그런 까닭에 시비피 원 앱 가동이 중단됐다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한 남부 국경 단속이 시작됐음을 시사한다"고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짚었다.
눈앞에서 미국 입국 문이 닫히면서 멕시코 국경도시에서 인터뷰 순번을 기다리던 이민희망자들은 좌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멕시코 서남부 미초아칸 출신으로 어린 네 자녀와 함께 21일 미국 이민당국에 면접 심사를 받을 예정이었다는 마우라 에르난데스는 "충격을 받았다"면서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에서 멕시코 국경지대까지 왔다는 구스타보 셀바는 "오늘 별문제 없이 (미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너무도 실망스럽다"면서 "이제 우리는 여기에 기약 없이 발이 묶이게 됐다"고 털어놨다.
전직 미 국토안보부 당국자는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시비피 원 앱을 통한 입국절차가 개시되길 기다리고 있던 이민·망명 희망자가 거의 30만명에 이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이들이 합법적인 입국을 포기하고 집단적으로 미국 국경을 넘으려 시도하면서 상당한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때 미국 국경순찰대 고위직을 맡았던 매슈 후덕은 NYT 인터뷰에서 "많은 이들이 합법적 절차를 밟을 것인지, 훨씬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불법적 수단으로 이 나라에 들어오려 시도할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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