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개국서 중국산 수입품 199건 조사…보조금 업고 과잉생산품 물량 공세
'글로벌 교역 공공의 적' 꼽힌 中, 트럼프 시대 무역관계 더 다변화 전망
(서울=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 지난해 중국의 전례 없는 무역 흑자 뒤에는 중국산 저가 수입품의 무차별 공습에 신음하는 전세계의 산업 생태계가 있었다.
'미중 무역전쟁'이 선포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부터 중국은 수출 분야에서 미국의 비중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그 여파는 선진국만이 아닌 개발도상국에까지 미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귀환으로 미중 무역갈등이 고조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중국이 내수 침체를 극복하지 못하고 과잉 생산을 계속하는 한 이들 국가 간 무역분쟁은 더욱 급증할 전망이다.
◇ 중국산 수입품 대상 무역조사 1년새 87건→199건
21일 중국 세관 당국인 해관총서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연간 수출은 전년 대비 7% 넘게 증가한 25조5천억위안(약 5천101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무역 흑자도 7조위안(약 1천400조원)을 넘기면서 전례 없는 성장을 보였다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몇 년째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중국은 이러한 수출 성장에 힘입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의 목표치인 '5%'까지 달성했다.
폐쇄적인 중국 정부에서 발표하는 수치의 신뢰도 문제와는 별개로 세계 시장에 중국산 상품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불문하고 중국산 저가 상품의 밀어내기식 물량 공세가 불러오는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압력에 제조업 기반이 흔들리는 공포까지 더해지자 세계 각국은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는 모양새다.
중국 무역구제정보망(CTRI)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산 수입품을 대상으로 한 세계 각국의 무역구제 조사건수는 총 199건으로 집계됐다. 2023년(87건)과 비교해 2배 넘게 증가했다.
분야별로 보면 반덤핑 156건, 상계관세 26건, 세이프가드 17건 등이었다.
국가별로 보면 인도 37건, 미국 31건, 유럽연합(EU) 21건, 브라질 19건 등이었다.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무역구제 조사를 제기한 국가의 수도 2023년 18개국에서 2024년 28개국으로 증가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적했다.
특히 여기에 태국, 페루, 파키스탄 등의 개발도상국이 추가된 것이 눈에 띈다고 SCMP는 짚었다.
미국 오리건주에 있는 윌라멧대학교의 량얀 이코노미스트는 "다수의 무역조사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제적으로 취한 조치들"이라면서 "중국이 미국 대신 이들 국가에 진출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중국산 수입품이 급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 中, 철강·배터리·전기차·태양광 등 과잉 생산
국제 무역 구도를 흔들고 있는 중국산 저가 상품은 어디까지 영역을 뻗어나가고 있을까.
업계는 철강, 배터리, 전기차, 태양광, 화학제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이 침투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해 8월 발간한 '중국 공급과잉에 대한 주요국 대응 및 시사점'에 따르면 중국은 이 분야들에서 두드러지게 과잉 생산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철강 생산 설비 규모는 2014년 고점을 찍은 뒤 감소하고 있으나, 가동률이 증가하면서 철강 생산량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으로서 2000년 기준 점유율 15%를 차지하던 중국은 2020년에는 세계 점유율이 57%까지 증가했다.
중국의 부동산 경기 침체로 철강 내수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잉여 생산분을 수출 확대를 통해 밀어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른 분야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중국의 배터리 생산 능력은 전세계의 수요를 초과하고 있으며, 전기차 생산량은 2023년의 경우 954만대가 생산됐으나 841만대가 판매되는 데 그쳤다.
태양광 분야는 중국이 '3대 신사업'에 포함하면서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공급 과잉이 발생했다. 2023년에는 태양광 웨이퍼 가격이 전년 대비 75% 급락, 모듈 가격이 전년 대비 50%나 급락하는 등 태양광 시장 가격이 전체적으로 하락했다.
이러한 과잉 생산과 저가 공세가 가능하게 된 배경으로는 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이 꼽힌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등의 신에너지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보조금은 2009년부터 2022년까지 1천730억달러(약 239조원)에 달했다.
보조금을 받은 배터리 기업은 생산량이 중국 내 수요를 초과하자 중국산 저가 배터리가 남아프리카, 독일, 이탈리아, 미국 등으로 시장 진출을 모색했다.
중국의 보조금 정책은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계 기업은 수혜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한국무역협회는 지적했다.
◇ "중국의 디플레 수출, 국제 경제 문제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은 최근 글로벌 교역의 장에서 '공공의 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 지원에서 비롯된 과잉 생산과 저가 상품 밀어내기를 통한 '디플레 수출'이 각국이 무역 빗장을 걸게 만들고 국제 경제의 중요 의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이에 대해 "아무런 근거가 없는 보호무역주의일 뿐"이라면서 "특히 신에너지 관련 분야는 수요가 계속 늘고 있어 과잉생산이 아닌 오히려 부족한 상태"라고 반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복귀로 '무역전쟁 2라운드'가 펼쳐질 것이란 관측 속에 중국은 지난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을 통칭) 등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행보를 보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5년 신년사에서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 단결·협력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또 군사적 긴장 관계에 있던 일본이나 인도를 향해서도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미국 바깥으로 눈을 돌려 새로운 '고객'을 찾아 나서는 듯한 중국의 전략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미국이 중국 수출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한 2019년 19%에서 지난해 13%까지 감소했다고 SCMP는 밝혔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트럼프식 관세 협박이 양국 간 경쟁 구도에서 지난 정부 때만큼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글로벌 무역 구도에서 입지가 더욱 복잡해진 중국이 무역 장벽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다른 지역을 대상으로 한 더 많은 현지 투자나 무역협정 전략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SCMP는 덧붙였다.
suk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