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각서엔 '한국·한미FTA' 언급 없지만 2기 행정부도 '미국 우선정책'
트럼프 1기, 벼랑 끝 협상으로 한미FTA 개정 압박…"차분한 정부 대응 필요"
(서울=연합뉴스) 이슬기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취임 직후 외국과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과 기존 무역협정에 대해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림에 따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움직임이 뒤따를지 관심이 쏠린다.
21일 공개된 미국 백악관의 대통령 각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과 '미중 경제무역 협정 준수'에 대한 검토를 포함해 모든 무역협정(all trade agreements)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 각서에는 이 같은 협정들이 미국 노동자와 제조업체에 유리한 방식으로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권고 사항을 제시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날까지 공개된 각서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한국과의 교역 내용은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가 USMCA를 포함한 기존의 모든 무역협정에 대해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만큼, 향후 한미 무역수지 균형 문제부터 한미FTA 개정 이슈 등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1기 행정부 시절부터 무역적자 해소와 관세를 활용한 보호무역주의를 무역·통상 정책의 핵심으로 삼아온 만큼, 2기 행정부에서도 비슷한 정책과 협상이 재현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대통령 각서에서도 "2017년 1기 행정부에서 미국 경제와 노동자, 국가 안보를 최우선으로 두는 무역·경제 정책을 시행해 안정적인 공급망, 경제 성장, 낮은 인플레이션, 실질임금 및 가계 자산 증가, 무역적자 축소 등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2기 행정부에서도 이 같은 무역 정책을 국가 안보의 핵심으로 두고, 미국 노동자와 기업에 혜택을 주는 '미국 우선 무역정책'(America First trade policy)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시점에 한국의 국내 정치가 계엄 사태와 탄핵으로 혼란에 휩싸인 점은 공교롭게도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당시와 흡사한 상황이다.
후보 시절 한미FTA를 두고 "일자리 킬러"라고 비판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약 두 달 만인 2017년 7월 갑작스레 한국 측에 한미FTA(KORUS) 수정 요청을 통보했다. 이후 약 1년여간 한미FTA 개정 협상을 몰아붙여 관철했다.
당초 한국 측 협상팀은 협상 초기 불균형 무역을 시정하라는 미국 측의 요구에 쉽게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특정 농업 분야의 장벽 철폐, 소형 트럭 관세 철폐 연기, 특정 통관 절차 및 의약품 환급 절차 변경 동의 등 미국 측 요구를 들어줘야 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측에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아 협상의 지렛대로 쓰기도 했다.
한미FTA 개정 협상을 이끌었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협정 탈퇴'도 불사할 듯한 트럼프 대통령의 '벼랑 끝' 협상 전술이 한국 협상팀에 상당한 압박을 줬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는 한국과 협상에 대해 저서에서 "우리는 미국 산업을 돕고 무역 적자를 줄였다. 일방적으로 행동했지만, 자유무역주의자들이 예측했던 것처럼 세계가 끝장나지는 않았다"며 "우리는 미국 우선주의 무역정책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줬다"고 서술했다.
정부와 통상 업계 안팎에서는 이 같은 트럼프 1기 시절의 통상 협상을 참고해 향후 모든 시나리오에 차분히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날 취임사와 행정명령, 대통령 각서 등에서 명시적이고 직접적으로 한국을 타깃으로 삼겠다는 내용은 없었기 때문에 지나치게 위축될 필요는 없지만 혼란한 국내 정치 상황 속에서도 꼼꼼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여한구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위원(전 통상교섭본부장) 통화에서 "대통령 각서 내용을 보면 미국이 시간을 벌면서 경제 상황 등을 보고 어떤 조처를 할지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이나 한미FTA가 타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드러났기에 우리로선 서두를 필요 없이 멕시코, 캐나다, 중국 등의 상황을 지켜보며 조용히 집중해서 준비하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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