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첫날 관세조치 발표 안해…미국 인플레 우려 등 의식한 듯
고율 관세 현실화시 수출 많은 韓기업 영향 불가피…"계속 대비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이슬기 강태우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상과 달리 취임 첫날 관세 조치를 즉각 발표하지 않으면서 국내 기업들의 우려도 일단 관망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관세와 무역은 의심할 여지 없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꼽히는 만큼 고율 관세 리스크는 현재 진행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취임사에서 그동안 공언해온 대로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해 제조업을 되살리고 미국을 부강하게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재확인하고 관세를 징수할 대외수입청(External Revenue Service) 신설을 발표했으나 구체적인 신규 관세 부과 조치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취임 첫날 관세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겠다고 예고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언급을 자제하자 달러인덱스가 하락하는 등 시장도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관세 조치를 발표하지 않은 배경에는 미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부담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중국에서 수입하는 상품에 60%의 관세를 부과하면 2025년에 미국 인플레이션 지수가 0.4%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저물가 저금리를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무리한 공약으로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재발하는 것을 원치 않은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미국 내 생필품에 관세를 붙이면 미국 물가가 더 뛰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고려해 (관세 조치를) 협상 중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장은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에 대한 우려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으나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기업에 관세 리스크는 여전하다.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위원은 "보편관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대비는 계속 해야 한다"며 "취임 첫날에는 이민 정책과 에너지 쪽에 초점을 맞췄지만 관세 얘기가 조만간 등장할지는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통령 각서를 통해 무역적자와 불공정 무역, 주요 무역 상대국과의 관계 등에 대해 관계 부처에서 조사하라는 지시가 나올 예정이어서 관세 문제에 대해 한국이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수입품에 매기는 10∼20%의 보편적 관세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공약이 현실화하면 수출 비중이 큰 한국 기업에 부담이 된다.
미국이 보편관세 20%와 대중국 관세 60%를 부과하면 우리나라 수출액이 최대 448억달러(약 65조원) 감소할 것으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전망했다.
수출 상위 품목인 반도체, 자동차, 자동차부품, 석유제품, 합성수지 등의 업종을 중심으로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의 관세 조치에 더해 제3국의 보복 관세도 잇따를 수 있어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또 대중국 관세가 현실화하면 미국으로 가던 중국산 공산품이 한국을 포함한 제3국으로 판로를 틀 수 있다. 그 경우 한국 제조업이 어려움에 직면할 수도 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대로 멕시코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대미 수출의 전초 기지를 찾아 멕시코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도 비상이 걸린다.
현재 멕시코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가전과 TV 등의 공장을, 기아가 자동차 공장을 운영한다. 현대모비스와 현대트랜시스도 생산 공장을 운영 중이다.
미국의 관세 장벽에 대응해 국내 주요 기업들이 마련하는 돌파구는 미국 생산과 투자 강화다.
특히 자동차나 가전 같은 최종 제품은 미국에서 생산해 바로 현지에서 판매하면 관세 부담을 많이 덜 수 있다.
LG전자는 현재 세탁기와 건조기를 생산하는 미국 테네시 공장에서 냉장고와 TV 등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미국에 자동차 강판 제품 등을 생산하는 제철소 건설을 검토 중이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현대제철 한국 공장에서 생산한 강판을 가져다 미국 공장에서 자동차를 생산한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 관련 불확실성이 국내 기업에 큰 리스크로 작용한다"라며 "미국의 정책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해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rice@yna.co.kr, wise@yna.co.kr, burni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