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구마와 무속신앙의 절묘한 컬래버…영화 '검은 수녀들'

연합뉴스 2025-01-21 00:00:17

송혜교·전여빈 주연 오컬트물…캐릭터·서사에 방점

영화 '검은 수녀들' 속 한 장면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암캐 따위가 들어와?"

"뭐라는 거니. 일단 좀 씻자."

악령이 깃든 소년 희준(문우진 분)이 라틴어로 화를 내자 유니아 수녀(송혜교)가 약수통에 받아온 성수를 그의 몸에 쏟아붓는다. 희준이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유니아의 손길은 거침이 없다.

계속되는 공세에 악령이 자취를 감추면서 유니아는 끝내 희준의 몸에 자리한 악마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그는 다음을 기약하며 씁쓸하게 웃는다. 문 바깥에는 그가 피우다 만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다.

권혁재 감독이 연출한 영화 '검은 수녀들'은 희준을 구하려는 유니아의 분투를 담은 오컬트물이다. 544만 관객을 동원한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2015) 이후 10년 만에 나오는 스핀오프(기존의 영화에서 등장인물이나 설정을 가져와 만들어낸 새로운 작품)다.

장 감독이 '검은 사제들'을 비롯해 '사바하'(2019), '파묘'(2024) 등으로 팬층을 쌓은 이후 한국에서 오컬트 장르 영화를 선보이는 건 쉽지 않은 도전으로 여겨진다. 장 감독의 영화로 관객의 기대치가 높아진 데다 그간 구마(마귀를 몰아냄)를 다룬 많은 작품이 쏟아져나온 탓이다.

'검은 수녀들'은 악령이 만들어내는 공포보다는 캐릭터와 서사에 방점을 찍는 영리한 선택을 했다. 구마 의식 자체보다 이를 거행하는 수녀들의 면면에 집중하고 이들이 왜, 어떻게 이 일에 뛰어들게 되는지를 보여주면서 뻔한 오컬트물과 차별화를 꾀했다.

영화 '검은 수녀들' 속 한 장면

김 신부(김윤석)와 최 부제(강동원)가 주축이 된 '검은 사제들'처럼 '검은 수녀들'도 유니아와 미카엘라(전여빈) 수녀 두 인물이 이야기를 이끈다.

구마 의식의 주체가 사제에서 수녀로 바뀐 점은 신선함을 안기지만, 단순히 흥미를 돋우기 위해 성별을 전환한 것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두 주인공이 사제가 아닌 수녀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오기 때문이다.

유니아는 부마(귀신이 들리는 현상)를 믿지 않는 바오로 신부(이진욱)에게서 "서품도 못 받는 수녀가 구마를 하느냐"는 말을 듣는다. 수녀에게 구마를 허락할 수 없다는 교구의 불호령도 떨어진다. 하지만 유니아는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미카엘라의 질문에 "사람을 살리는 데 무슨 명분이 필요하냐"고 반문한다.

가톨릭 내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수녀들이 벌이는 구마 의식은 그래서 더 극적이고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아무도 자기들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금기를 깨서까지 희준을 살리려는 이들의 고군분투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유니아와 미카엘라는 악령을 희준의 몸에서 쫓아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희준을 사제들 몰래 병원 밖으로 빼돌리고 의식에 필요한 물건을 직접 공수한다. 심지어 수녀 출신의 무당과 손을 잡거나 타로로 점괘를 보기도 한다. 전통적인 관점의 가톨릭에서는 모두 터부시되는 것들이다.

영화 '검은 수녀들' 속 한 장면

특히 한국 무속신앙의 굿판과 가톨릭 구마 의식의 컬래버레이션(협업)은 색다르면서도 묘한 긴장감을 안긴다. 한쪽에선 경문을 외며 북을 치고 다른 한쪽에선 십자가를 쥔 채 기도하는 구도는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보기 어려웠던 광경이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영화에서 제 역할을 한다. 수녀라고 하면 보통 자애롭고 성스러운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유니아와 미카엘라는 이와는 정반대다. 송혜교는 사제들 앞에서도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고 실행력이 뛰어난 유니아 역으로 중심을 잡아준다. 전여빈은 상처와 비밀을 숨긴 채 최선을 다해 유니아를 돕는 미카엘라 역을 무리 없이 소화한다.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고 우정을 나누는 모습으로 인해 버디물 같은 분위기도 조성된다.

문우진의 열연도 빛난다. '검은 사제들'의 박소담이 그랬듯, 그 역시 사지가 묶인 채 격앙된 감정을 라틴어로 쏟아내다가 겁에 질린 평범한 소년으로 돌변하는 강도 높은 연기를 훌륭하게 해냈다.

24일 개봉. 114분.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 '검은 수녀들' 속 한 장면

ramb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