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치는 '미국 우선주의'…신흥국 채권시장 타격

연합뉴스 2025-01-20 10:00:07

"저신용국 국채 발행 거의 불가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서울=연합뉴스) 주종국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취임하면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더 강하게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올해 연초부터 신흥국 채권 시장이 타격을 받고 있다.

신흥국에서도 그나마 신용등급이 높은 국가의 경우 국채 발행이 가능했지만, 신용도가 낮은 정크(투기) 등급 국가들은 국채 발행이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글로벌 채권금리가 많이 오르면서 신용도가 약한 신흥국의 해외 자본 조달이 한층 더 어려워졌다고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일부 신흥국들은 트럼프의 취임 이후 보편관세 부과와 불법 이민자 추방 등의 정책이 시작되면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들고 시중 금리도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연초부터 서둘러 달러나 유로화 명목의 외화채권을 발행했다

이에 따라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외화 명목 채권(유로본드) 발행 총액은 약 340억 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12% 증가했다.

발행에 성공한 나라는 대부분 투자 등급 국가였다. 올해 8개 국채 발행국 중 사우디아라비아, 멕시코, 슬로베니아를 포함한 7개국이 투자적격 등급을 받은 나라다.

아프리카의 소국 베냉의 경우 정크 등급 국가로, 지난 16일 추가 금리를 얹어서 5억 달러 규모를 간신히 발행할 수 있었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주요 신용평가사로부터 BBB-/Baa3 이하의 정크 등급을 받은 국가의 국채 발행 규모는 올해 들어 현재까지 약 60억 달러로 전년 대비 7% 감소했다. 2020년 이후 가장 작은 규모다.

지난 17일에는 바레인이 국채를 발행하려 했으나 투자자들이 신용에 비해 금리가 너무 낮다며 외면하는 바람에 포기했다.

페더레이티드 헤르메스의 모하메드 엘미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신흥국 시장은 미국 경제 강세와 고금리, 고착화된 인플레이션이라는 글로벌 경제 상황에 적응하고 있다"면서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다시 나올 경우 금리를 더 밀어 올려 신흥국 이자 부담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흥국 달러 표시 채권의 평균 금리는 지난 5주 동안 40bp(1bp=0.01%포인트) 이상 상승해 연 6.84% 수준이다. 가장 낮은 등급인 싱글B 등급 채권은 이 기간 54bp 상승했다.

이런 시장에서는 저신용 국가들이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많지 않다.

베냉처럼 더 높은 이자를 물고 국채를 발행하거나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기관에서 차입하거나,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길뿐이다.

최근 일부 국가는 사모 시장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B-/B3 등급의 앙골라는 지난달과 이달 총 20억 달러 규모의 국채를 발행해 이를 미국 대형 투자은행 JP모건에 담보로 맡기고 대신에 10억 달러를 조달했다.

JP모건은 이전에도 파나마에 10억 달러를 긴급 유동성 자금으로 지원했다.

파키스탄은 올해 중국 위안화 표시 채권을 발행할 계획이다.

RBC 블루베이 자산운용의 미하이 플로리안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일부 저신용 국가들에는 지금이 국채 발행 적기가 아닐 수 있다"면서 "국채를 발행해 매각하기 매우 어렵고 힘든 시기이므로 규모와 기간 선택이 쉬운 사모 신용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sat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