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유적(遺跡)과 같은 곳이다. 야스쿠니신사에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를 비롯한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合祀)돼있기 때문이다. 신사에는 또 일본을 위해 싸우거나 일하다가 사망한 사람들도 봉안해놓았다. 이들 중에는 강제로 일본에 끌려갔던 한국인들과 대만인들도 합사돼있다.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왕실의 조상들과 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들을 신(神)으로 모신 사당이다. 메이지(明治) 국왕이 1869년 쇼콘샤(招魂社)라는 명칭으로 창건했으나, 10년 뒤 '어지러운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라는 뜻의 야스쿠니(靖國)로 개명했다. <춘추좌씨전> 가운데 '오이정국야'(吾以靖國也)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 신사는 청일전쟁·러일전쟁·만주사변·제2차 세계대전 등 일본이 자행한 주요 전쟁에서 숨진 군인과 민간인 246만6천여 명의 위패를 보관해두고 제사를 지낸다.
야스쿠니신사는 전형적인 일본 신사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주요 건물로는 본전(本殿)과 영령각(英靈殿)이 있다. 매년 4월 21일 봄 제사, 10월 17일에는 가을 제사를 지낸다. 야스쿠니신사는 제국주의 시절 일본 왕실이 경비를 부담하는 특별 관폐(官幣) 신사로서 군국주의 팽창 정책을 종교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종전 후에는 국가 관리에서 벗어나 사설 종교법인으로 격하됐으나, 일부 정치인들과 극우 인사들에게는 우리의 현충원과 같은 추모시설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야스쿠니신사가 또다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 최고재판소(우리의 대법원 격)는 지난 17일 한국인 합사자 유족 27명이 2013년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제기한 '합사 취소' 소송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야스쿠니신사에 한국인 합사가 1959년에 이뤄져 20년 내인 1979년까지 소송을 제기했어야 하는데 제척 기간 20년을 넘겼다고 판시했다. 앞서 일본 사법부는 1·2심에서 원고의 권리와 이익이 침해됐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야스쿠니신사에 유족의 동의 없이 한국인이 합사돼 있다는 사실은 1990년대 이후 일본 정부를 상대로 강제동원 피해배상 요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이에 유족들은 2001년부터 일본 법원에 합사 취소 소송을 냈다. 야스쿠니에 합사된 한국인 수는 2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는 한일 수교 60주년이다. 반세기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과거사 이슈로 일본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이웃'이다. 특히 야스쿠니신사는 양국 관계에서 언제나 '장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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