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명패골목 찾아가 보니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김준태 기자 = "우리랑은 관계없어요. 앞집에 가보세요."
지난 17일 오후 찾아간 종로구 관수동 '명패골목'의 한 가게 주인은 '최근 보수 집회에서 태극기를 많이 드는데…'라고 운을 뗀 기자에게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가리킨 앞집 사장도 말을 듣자 "가게에서 나가달라"고 했다.
관수동 명패골목은 휘장, 명패, 상패, 트로피를 만드는 점포 250여개가 모인 전국 최대규모 휘장 상권이다. 1980년대 3∼4개 업체가 문을 연 것에서 시작해 현재 종로·청계 관광특구로 지정돼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보수 집회가 잦아지며 '참석 필수품'인 태극기 수요도 커졌지만, 장인정신을 상징하는 이곳 상인 대다수는 최근 업황에 관한 질문에 입을 닫았다.
이들의 설명 없이도 상권이 '특수'와는 거리가 먼 상황임이 짐작됐다. 한낮인데도 휑할 정도로 손님이 뜸했고 셔터를 내리거나 문을 닫은 가게도 적잖았다.
가까스로 대화한 한 가게 사장은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이 이곳에서 태극기를 사 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참석자 대다수가 온라인 혹은 집회 현장에 매대를 놓은 상인을 통해 값싼 중국산 제품을 사는 것 아니냐고 추측했다.
골목에는 성조기를 취급하는 상인도 많았다. 50년 가까이 가게를 운영해왔다는 한 도매상은 "국경일 같은 때나 조금씩 사 가지, 집회는 판매량과는 거의 무관하다"며 "요새는 별로 많이 안 나간다"고 했다.
상인들이 집회와 관련한 질문을 부담스러워하는 데엔 태극기가 강성 '아스팔트 우파'를 상징하게 된 점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쯤부터 태극기는 성조기와 함께 보수집회의 심볼로 등극했다.
보수집회 주최 측은 "태극기는 이승만 대통령이 기틀을 마련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성조기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뜻한다"며 "북한과 중국을 옹호하는 진보 세력으로부터 나라의 기틀을 수호하기 위해 태극기를 흔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단체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눠줄 때도 있지만 집회 참석자들은 대개 개인적으로 준비해온다고 설명했다. 쿠팡과 네이버 등 오픈마켓에는 한 손에 들 수 있는 작은 태극기가 개당 2천∼3천원에 팔린다.
외신은 국내 집회에 성조기가 등장하는 데 주목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윤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성조기는 동맹국을 넘어서 하나의 이상향을 뜻한다"며 "현재 위협받는다고 믿는 문화적, 정신적 질서를 선언하는 상징물"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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