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6개 식당 '가치'…저렴한 월세 기반, 지역 제철 농산물로 '맛집' 반열
한 달 1천여명 방문…"지역의 다양한 장점 토대로 가치 있는 식당 운영" 다짐
[※편집자 주 = 지방에 터를 잡고 소중한 꿈을 일구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젊음과 패기, 열정으로 도전에 나서는 젊은이들입니다. 자신들의 고향에서, 때로는 인연이 없었던 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새로운 희망을 쓰고 있습니다. 이들 청년의 존재는 인구절벽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사회에도 큰 힘이 됩니다. 연합뉴스는 지방에 살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청년들의 도전과 꿈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합니다.]
(거창=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외국살이에 지친 데다 한국에서 자리를 잡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 때문에 한국행을 결정했고, 아내 고향이라는 점에서 거창을 택했습니다."
1988년생 동갑내기 부부인 임봉철(36) 씨와 아내 김민지(36) 씨는 10년간의 해외 생활을 마치고 경남 서북부에 위치한 거창군으로 귀촌해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서울 토박이인 임씨는 대학에서 배운 조리학을 바탕으로 싱가포르의 한 식품회사와 식당에서 각각 5년씩 총 10년을 근무한 요리사(셰프)다.
이런 경력의 임씨가 서울과 싱가포르 등 대도시에서 지내다가 인구 5만9천588명(2024년 12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현황 기준)인 군 단위 지역에서 터를 잡고 살게 된 이유는 뭘까.
거창은 803.38㎢의 작지 않은 면적이지만, 인구 소멸 지역으로 분류된다. 부산(771.31㎢)보다 넓은 점을 고려하면 인구 규모가 얼마나 적은지 와닿는다.
임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던 2021년 가을께 거창에서 1주일 머물렀는데 휘황찬란한 싱가포르에서 경험하지 못한 조용하고 한적한 환경에 마음이 힐링 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거창행을 생각한 것 같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아내 김씨는 "태어나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거창에 살았고, 사실 고향에 돌아올 줄은 몰랐는데 오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씨는 "빨래가 잘 마르고, 언제든 갈 수 있는 산이 있다는 것 등 사소한 모든 것이 행복으로 다가왔다"고 귀향 소감을 전했다.
모국을 떠나 외국인으로 살다 한국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례지만, 기존 거주자도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발걸음을 옮기는 군 단위 지역에 30대 부부가 귀촌하는 사례는 흔하지 않은데 이 부부가 거창행을 결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임씨 부부가 2023년부터 운영하는 식당 '가치'는 테이블이 6개인 소규모 음식점이다.
상호 '가치'에는 값어치를 일컫는 '가치(價値)'와 발음이 같은 '같이'의 중의적인 표현이 담겼다. '거창에서 생산한 식재료와 함께 고객에게 최고의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상호대로 가치는 거창에서 생산한 식재료로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코스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이다.
임씨는 식당 인근 거창시장이나 지역에서 알게 된 농가, 식품공장을 매일 혹은 이틀에 한 번꼴로 직접 방문하며 싱싱한 먹거리를 구매한다. 대부분의 재료를 거창에서 구매함으로써 지역 사회에도 보탬이 된다.
주메뉴는 제철 농산물에 따라 변경된다.
취재진이 식당을 찾은 지난 14일에는 육회, 스프링롤, 토란, 곡물, 제철 쌈 채소 샐러드, 국수, 제철 야채구이, 국물 밥, 후식 등의 메뉴를 선보였다.
가격은 광역시나 특별시의 3분의 1 수준이다.
임씨 부부는 대도시와 비교해 보증금 및 월세가 반의반도 되지 않으니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품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네이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상호를 검색하면 '거창 맛집', '대구 인근 맛집' 등으로 소문났고, 저렴하고 맛있다는 후기가 글과 사진으로 올라와 있다.
게시글에는 대부분 '내돈내산(광고나 협찬이 아닌 내가 직접 돈을 주고 음식을 구매해서 먹고 작성한 글이라는 의미)'이라는 글귀가 붙었다.
임씨는 "특별히 광고나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 온오프라인을 통해 입소문이 나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분이 찾아주셔서 신기하고 감사하다"고 전했다.
가게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운영하는데 지난해 1월부터 11월 말까지 1만532명이 다녀갔다.
한 달에 1천여명이 방문한 것인데, 테이블이 6개인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고객이 다녀간 것이다.
1년 정도 운영하니 단골도 생겼다.
주 고객은 거창군민이 절반, 나머지는 다른 지역에서 온다.
군 거주자는 물론 군 행사나 관공서 모임부터 광주, 여수, 거제, 구미, 남원, 대구 등 영호남에서 방문객이 찾는다.
임씨는 "가게가 유명해지면서 거창이 고향인 미국 유학생·독일 거주자 등도 SNS를 보고 찾아왔다"며 신기해했다.
이들 부부는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로 거창의 새로운 '다이닝'(식사) 문화를 만들어가는 점 등을 세운 공로로 지역사회로부터 인정도 받았다.
지난해에는 경남도가 주최하고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가 주관한 '2024년 청년 지역 가치 창출가 육성 지원사업 최종 성과 평가'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2023년에는 우수상을 받았다.
이들 부부는 "사실 지역에서 나만의 음식점을 운영하는 것에 대해 반신반의했는데 지역의 다양한 장점을 토대로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며 "앞으로도 지역에서 생산한 식재료를 이용해 지역민과 함께하는 가치 있는 식당을 운영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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