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간부 모시는 날'…공직사회 변할까

연합뉴스 2025-01-19 08:00:07

"5명 중 1명 경험, 시군구 더 심각"…'MZ 공무원' 공직 등 돌리는 배경 추측

정부, 근절 지시·위반시 법따라 처리…전문가 "관행 아닌 악습, 뿌리 뽑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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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양정우 이상서 기자 = 공직사회 내 오랜 관행으로 꼽히는 '간부 모시는 날' 논란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MZ세대 공무원들의 이탈과 맞물려서다.

간부 모시는 날은 하급자들이 순번을 정하고 사비를 모아 상급자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을 말한다. 공직사회 밖에선 '세상에 아직도 그런 문화가 있느냐'고 의아해할 법하지만, 현실에선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정부의 첫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공무원 5명 중 1명꼴로 '최근 1년 내 간부 모시는 날을 경험했다'고 답할 정도로 공직문화에 내린 뿌리가 깊다.

정부는 최근 중앙부처·지방자치단체에 모시는 날 금지령을 내리고 위반 공무원은 행동강령 등을 적용해 처벌할 것을 예고했다.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조치이지만 승진 중심의 공직문화를 근본부터 바꾸지 않는 한 퇴출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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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문화…'MZ 공무원' 이탈 배경 작용

"간부 모시는 날이라는 관행은 언제부터 있었던 건가요?"(기자), "글쎄요, 이곳(공직사회)에 들어오니까 하고 있던데요."(공무원)

기자 질문을 받은 공무원들은 대체로 비슷한 답을 내놨다. 관행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만큼 오래되고 뿌리가 깊다는 얘기다.

공무원들은 조직·인원 규모가 크고 순환근무가 많은 중앙부처보다는 기초 시군구에 이런 문화가 더 심각할 것으로 봤다.

공무원 생활 내내 같은 근무처에서 얼굴 볼 일이 많은 기초 지자체일수록 이러한 관행의 탈을 쓴 악습을 홀로 피해 가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이런 점은 정부가 작년 11월 중앙부처·지자체 공무원 15만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첫 실태조사를 통해 재확인된다.

해당 조사에서 공무원의 18.1%가 최근 1년 내 간부 모시는 날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이중 중앙부처 공무원은 10.1%가 간부 모시는 날을 경험한 데 반해 지자체는 두 배가 넘는 23.9%가 유경험자였다.

설문에 응한 공무원들은 간부 모시는 날이 지속된 이유로 '관행이기 때문'(37.8%), '간부가 인사 및 성과평가 등의 주체이기 때문'(26.2%) 등을 꼽았다.

지자체에서는 '관행'이라는 답이 40.7%에 달했다. 중앙부처에서는 후자를 꼽는 경우(37.7%)가 더 많았다.

공무원 A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과거에는 중앙부처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그런 일이 있을까 싶다"면서도 "모시는 관행이 많이 남아 있을 곳은 규모가 작은 기초 시군구일 것"이라고 전했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모시는 날이 다시금 논란이 된 건 최근 수년간 눈에 띄게 늘어난 MZ 공무원의 이탈 문제 때문이다. 5년 내 조기 퇴직한 MZ 공무원은 2023년 1만3천여명으로, 2019년(6천600여명)의 2배가 넘는다.

모시는 날은 낮은 보수에 더해 갑질, 세대갈등 등에 실망한 신입 공무원이 공직을 떠나게 만든 또 하나의 배경으로 볼 수 있다. 과거처럼 이런 관행을 공직 사회의 '불편한 상식' 정도로 받아들이고 따라갈 젊은 공무원은 더는 없다는 의미다.

지자체·중앙부처에서 일하다가 퇴직한 30대 남성은 "과거 한 지자체로 발령 나자마자 소속 과장을 중국집에 모셔 고량주와 요리를 대접한 적이 있다"며 "당시에도 모시는 날을 근절하겠다고 떠들썩했지만 지금도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래픽] 초임 공무원 퇴직 현황

◇ 관행 아닌 '악습'…"신고 창구 만들고, 문제 제기해야"

모시는 날이 공론화되자 정부는 바빠졌다.

MZ로 대변되는 신입 공무원들이 줄줄이 짐을 싸고 나가는 마당에 더 이상 구태를 묵과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는 일선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처음 실시한 데 이어 앞으로 조사를 정례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행안부는 중앙부처, 17개 시도에 공문을 보내 모시는 날이 근절되도록 적극 협조를 요청했다. 더는 공직사회 내 이런 관행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팔을 걷어붙였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모시는 날이 공무원 행동강령 등에 저촉되는 행위라는 점을 공무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릴 방침이다. 오는 5∼7월에는 위반 행위에 대한 신고를 받아 청탁금지법과 공무원 행동강령에 따라 처리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모시는 날이 악습이자 불법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근절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유경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과거에는 잘못이라는 인식이 없었을지 몰라도 시대가 변한만큼 갑질이자 공무원 징계령에 근거해 징계받을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며 "충분히 중징계로 다룰 수 있는 사안이며 익명 신고 활성화를 통해 수면 위로 떠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인임 노동정책연구소 이음 이사장도 "공무원만큼 승진이 직장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조직도 없다"며 "그러다 보니 승진 여부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윗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 이사장은 "다면평가 등 윗사람만으로 승진이 좌지우지되지 않을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들고, 행안부 등 중앙행정기관이 시스템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하급 직원들이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경원 공인노무사는 "조직 내 고충 처리기구나 노동조합을 통해 피해 신고를 받고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며 "일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조직 전체의 병폐이자 근절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인식을 보여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최근 인사혁신처, 권익위와 간부 회의를 열어 간부들을 중심으로 먼저 인식을 개선하자고 했다"며 "중앙기관과 지자체에 근절 권고문 공문을 보낸 데 이어 향후 실태조사를 시행해 변화 양상을 살피겠다"고 말했다.

eddie@yna.co.kr, shlamaze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