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취임 앞두고 정상회담…군사·경제 등 전분야 협력 강화
푸틴 "새로운 차원으로 관계 격상…획기적 문서"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포괄적·전략적 동반자 조약을 체결, 양국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타스,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과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약 3시간에 걸쳐 정상회담을 한 뒤 20년간 유지될 러시아와 이란의 포괄적·전략적 동반자 조약에 서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현재 상태에서 멈추지 않고 관계를 질적으로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자는데 만장일치로 동의했다"며 "이 진정으로 획기적인 문서는 러시아와 이란, 유라시아 전체의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에 필요한 조건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도 "오늘 우리가 이룬 합의는 다극 세계를 만드는 또 다른 자극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2001년 러시아와 이란이 체결한 상호 관계와 협력 원칙에 관한 조약을 대체하는 이번 조약으로 양국 관계는 전략적 동반자로 새롭게 정의됐다.
조약의 세부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정치, 안보, 무역, 투자, 인도주의 분야에서 장기적으로 양국 협력을 심화하는 야심 찬 과제와 기준을 설정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양국 당국자들은 새 조약이 국방을 비롯해 대테러, 에너지, 금융, 교통, 산업, 농업, 문화, 과학기술 등 전 분야를 포괄하지만, 러시아와 북한이 지난해 체결한 조약과 달리 군사적 동맹을 창설하는 내용은 포함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날 정상회의를 시작하면서 푸틴 대통령은 "이번에 체결하는 조약이 양국 간 협력의 모든 분야에 추진력을 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제재를 받는 두 국가 정상이 오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을 앞두고 새 조약을 체결해 양국 관계를 끌어 올린 것은 새 미국 정부에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는 차원이란 분석도 나온다.
두 정상은 양국이 경제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와 이란은 모두 서방 제재로 인해 경제적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특히 무역·경제 관계에 새로운 큰 장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가스 시장을 잃은 러시아는 이란을 새로운 시장으로 개척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이란의 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는 에너지"라며 양국이 가스 공급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사업 초반에는 연간 최대 20억㎥에 불과하겠지만 연간 550억㎥로 가스 공급량을 늘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550억㎥에 대해 로이터 통신은 러시아가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으로 유럽에 공급한 가스양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가스 사업을 위해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푸틴 대통령은 원자력 발전 사업에 대해서도 현재 러시아가 이란에 건설한 원전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추가 원전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란과 석유 부문 협력도 논의 중이라고도 덧붙였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관세, 금융, 투자, 비자 면제 문제 등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양국 무역에서 자국 통화 결제 비중이 증가했으며 국가 경제 시스템을 연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동 정세와 관련해 푸틴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휴전 합의가 "이 지역의 인도주의적 상황을 완화하고 장기적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포괄적 해결을 위한 노력을 늦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정치적 해결을 환영한다"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을 겨냥해 "전투와 전쟁에 관여하는 것은 문제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2022년 2월 시작한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은 이란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란은 러시아에 공격용 드론과 미사일을 제공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이란에 우크라이나 분쟁 상황을 정기적으로 알리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이란이 지원했던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지난달 반군에 축출된 가운데 푸틴 대통령은 "시리아의 미래는 시리아 국민들이 포괄적인 대화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취임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참석한 지 약 석 달 만인 이날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abb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