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김소월 시로 만든 뮤지컬 '어제의 시'

연합뉴스 2025-01-17 00:00:23

1930년대 경성 문학청년들의 꿈·독립운동 그려…시구 활용해 노래

뮤지컬 '어제의 시는 내일의 노래가 될 수 있을까'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16일 서강대 대극장 메리홀에서 열린 뮤지컬 '어제의 시는 내일의 노래가 될 수 있을까'(이하 '어제의 시') 프레스콜에선 귀에 익숙한 구절이 들려왔다. 이정익을 연기한 배우 성태준이 김소월의 시 '초혼'을 새로운 가락에 맞춰 불렀다.

'어제의 시'는 김소월의 시를 소재로 만든 첫 창작 뮤지컬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0 스토리움 우수스토리'로 선정된 이성준 작가의 소설 '붉은 진달래'를 원작으로 한다.

1923년 간토대학살을 계기로 1930년대 독립운동에 뛰어든 경성 청년들이 주인공이다. 도쿄에서 간토대학살을 목격하고 돌아온 이정익이 경성에서 재즈바를 운영하는 우혁(김우혁 분)과 신문사를 경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어제의 시'는 의지 일변도의 독립운동보다는 고민하고 갈등하는 청년들의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계 일본인으로 갈등을 겪는 사언희(한수림)가 대표적이다. 조선인이란 이유로 꿈을 접은 김동현(황시우) 등 청년들의 꿈과 희망, 좌절도 담았다.

뮤지컬로 만나는 김소월의 시

무장투쟁이 아닌 문학으로 독립운동에 나선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 과정에서 청년들은 고민하면서도 문학의 힘을 믿는다. 이는 일본 경찰 유키치(김진철)가 총과 칼을 앞세운다는 점에서 더욱 대비된다. 넘버 '시와 총칼'에서 이런 대비가 잘 드러난다. 이정익은 "나는 믿으리, 이 땅의 시를"이라고 노래하지만 유키치는 시가 "패배자의 도구"라며 일갈한다. 두 배우의 목소리가 대조를 이루는 점도 시와 총의 대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시와 총칼

'어제의 시'는 이러한 서사에서 김소월의 시를 적극 활용한다. '초혼'을 비롯해 '진달래꽃', '풀따기' 등 그의 9편의 시를 노랫말 등으로 녹여 청년들의 꿈과 희망, 좌절을 노래한다. 익숙한 시들이 어떤 가락의 노래가 되는지 지켜보는 게 주요 감상 포인트가 될 듯하다.

올해가 광복 80주년이자 시집 '진달래꽃'이 발간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 작품의 의미도 남다르다.

이강선 연출은 지금까지 김소월의 시를 소재로 한 작품이 없었던 점, '진달래꽃' 시집이 나온 지 10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 등이 김소월의 시를 활용한 계기였다고 밝혔다.

그는 "젊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김소월이란 시인을 통해 전파하면 좋겠다는 작은 생각으로 출발했다"며 "독립운동이 꼭 총을 들고만 하는 것은 아니고 글과 시, 말의 정신이 독립운동의 한 부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소월 선생의 서정적인 시뿐만 아니라 당시 살았던 민족의 감성도 드러내려 했다"고 덧붙였다.

열연 펼치는 황시우

이 연출은 제목을 '어제의 시'로 지은 데 대해서는 "어제의 시는 과거, 내일은 미래다. 이를 통틀어 제목을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며 "길어졌지만 의미 있는 제목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제의 시'는 오는 26일까지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encounter2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