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감독 "지금 같은 세상에 코미디가 빛을 발해야"

연합뉴스 2025-01-15 20:00:08

코미디극 '꽃의 비밀' 10주년 공연…정영주·장영남·이연희 등 출연

데뷔 30년 "오늘 내가 뭘 만들 수 있느냐가 중요"

장진, 믿고 보는 연출가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좋은 코미디는 어떤 장르보다도 시대를 아울러야 하고 같은 시대를 사는 마음을 잘 읽어내야 하죠. 역시나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코미디가 빛을 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진(54) 감독이 쓰고 연출한 코미디 연극 '꽃의 비밀'이 10주년을 맞아 새로운 캐스팅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

다음달 8일 서울 대학로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개막하는 '꽃의 비밀'은 이탈리아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여성 4명이 보험금을 타기 위해 각자의 남편으로 변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장진표' 코미디극이다.

장진 감독은 15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어지러운 시국에서 코미디극을 공연하는 의미에 대해 먼저 말을 꺼냈다.

장 감독은 "코미디는 풍자정신으로 사회의 가려운 면을 긁어주고 그 통쾌함 속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야기한다"면서 "10년, 20년 전이었다면 지금 같은 이슈가 벌어지면 아주 날 선 풍자를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최근에는 솔직한 심정은 내 생각과 반대되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꽤 많은데 그 일이 합당하건 그렇지 않건 그분들의 마음도 궁금하고 생각도 들어야겠다고 느낀다"고 덧붙였다.

'꽃의 비밀' 장진 감독과 배우들

이어 "내 코미디를 보고 그 극장에서 모두가 다 같이 웃고 있다면 이 사회의 어떤 사이를 좁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이해할 수 없고 정치적으로 이견이 있는 사람이 저쪽에 앉아있지만 잠시나마 같이 공감했다면 반대편까지 알게 모르게 이해하게 되는 느낌, 그것이 코미디의 도달지점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 작품은 2015년 초연에 이어 2016년, 2017년, 2019년에도 무대에 올랐다. 이번이 다섯 번째 공연이다.

장 감독은 "초연 후 10년 된 작품이라 부담감이 크다"며 여러 차례 긴장감을 토로했다.

"10년이라면 시행착오는 보완하고 훨씬 더 나아지고 재미있어야 해요. 이전 공연이 잘 됐다고 성공 사례를 믿는 건 실수고 위험한 생각입니다. 코미디는 희한한 게 관객들의 웃음이 정말 과격하게 바뀌거든요. 바짝 긴장하고 새로운 웃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은 지우고 초연 같은 기분으로 하고 있습니다."

연극 '꽃의 비밀' 코미디 걸작의 화려한 귀환

1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공연에는 연극은 물론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로 활동해 온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황당한 작전을 주도하는 왕언니 '소피아'역에는 박선옥과 황정민, 정영주가 출연하고 능청스러운 유머와 수위 높은 농담을 구사하는 술고래 '자스민'역에는 장영남과 이엘, 조연진이 캐스팅됐다. 예술학교 연기 전공 출신으로 미모를 자랑하는 '모니카'역은 이연희와 안소희, 공승연이 맡았고 무엇이든 고치는 막내 맥가이버 '지나'역은 김슬기와 박지예가 소화한다.

출산 후 복귀작으로 '꽃의 비밀'을 선택한 이연희는 "복귀가 이렇게 빠른 줄은 몰랐다"면서도 "장진 감독의 연극은 꼭 한번 해보고 싶었고 출연진도 같이해보고 싶었던 배우들인 데다 적절한 역할로 타이밍 맞게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장진표 연극 '꽃의 비밀' 기자간담회

정영주는 "우는 연기보다 웃는 연기로 무대를 채우는 게 어렵다는 걸 30년 무대 경험으로 알고 있다"면서 "유쾌하고 건강한 웃음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꽃의 비밀은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극 극작과 연출부터 영화감독, 예능프로그램까지 영역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활동하는 장진 감독은 올해 데뷔 30년을 맞았다. 1995년 희곡 '천호동구사거리'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하며 데뷔한 장 감독은 연극 연출과 영화감독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최근에는 추리 예능프로그램 '크라임씬'에도 출연했다.

연극 '꽃의 비밀' 연출한 장진

장 감독은 "30년이 됐다고 하니 민망하고 창피하다"면서 "30년 전 대학로는 이렇게 되어야지 이야기했던 걸 해보지 못한 채로 왔다"고 말했다.

"30년 전에 우리나라 초등 교과에 연극이 필수과목으로 들어가는 게 꿈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연극을 학교에서 배우면 아이들이 연극을 보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고 이들이 크면 연극을 지켜주는 든든한 관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이런 걸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싸워보지도 못했고 연대도 못했고 30년이 지나서 자책하게 되더라고요."

그는 "내가 예전에 뭘 했던 사람인가는 하나도 소용이 없다"며 현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늘 내가 뭘 만들 수 있느냐가 전부죠. '내가 옛날에 뭐 했던 사람인데' 이런 건 바보 같은 생각이에요. 지금 갓 데뷔하는 연출자, 작가와 똑같은 선상에서 평가받아요. 그래서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잔인할 수 있겠지만 특히 코미디는 관객 평가가 바로 나오잖아요. 이렇게 하면 100% (웃음이) 터진다고 (배우들에게) 이야기하는데 곧 판가름이 나잖아요. 5년 만에 무대에 올리는 소감이라면 긴장밖에 없어요."

zitro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