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러시아의 무력 침공에 맞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여론전'에 능하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 수시로 전황을 전하면서 서방 진영의 지원을 끌어내고 있다.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생포한 북한군을 공개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이달 11일(이하 현지시간) 텔레그램 채널에 북한군 2명을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지역에서 생포했다고 밝히고 포로 사진도 게재했다. 다음 날에는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북한군 포로를 러시아에 억류된 자국 병사와 '포로 교환'할 수 있다는 제안을 내놨다. 이 제안을 한글로도 썼고, 포로를 심문하는 동영상도 함께 공개했다. 이번에도 SNS를 활용해 국제사회에 북한의 우크라이나전 파병을 입증하는 '증거'를 내민 셈이다.
포로 심문 영상을 보면 손에 붕대를 감고 침대에 누운 채 조사받은 한 북한군은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묻자 머뭇거리다 "우크라이나 사람들 다 좋은가요"라고 되물었다. "여긴 좋아"라는 통역관의 대답에 "여기서 살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집에 가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가라면 가는데…"라고 말을 흐렸다. '지휘관들이 누구와 싸운다고 했느냐'는 물음에는 "훈련을 실전처럼 해본다고 했어요"라고 답했다. 이 북한군의 나이는 20세라고 우크라이나 당국이 앞서 밝혔다. 스무살 북한 청년이 제대로 영문도 모른 채 수천㎞ 떨어진 나라 밖 전장으로 내몰려 사선을 넘나들다 포로 신세가 된 상황에 말문이 막힌다. 초점을 잃은 듯한 그의 퀭한 눈이 애처로움을 더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북한군 포로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뜻을 숨기지 않는다. 국방부 정보당국 관계자는 13일 언론 인터뷰에서 "생포한 북한군이 전략적으로 활용 가치가 크다"며 "북한군 포로를 우크라이나 이익을 위해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앞서 젤렌스키는 포로 교환을 제안하면서 "귀환을 원하지 않는 북한 병사들에게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다"며 "특히 이 전쟁에 대한 진실을 한국어로 널리 알려 평화를 앞당기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군 포로의 제3국 송환 가능성까지 열어둔 것이다. 어쨌든 북한군 포로의 '운명'이 젤렌스키의 손에 달렸다고 하겠다. 우크라이나는 국제사회에 북한군 참전 사실을 확인시키고 북한군의 추가 파병을 막는 '다목적 카드'로 북한군 포로를 이용할 공산이 크다.
우크라이나는 북한군 포로에게 국제협약에 따른 인도적 처우를 제공해야 한다. 전쟁 포로를 언론에 적극 공개하는 것이 제네바 협약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전쟁포로의 처우에 관한 제네바 협약 제13조는 '전쟁 포로는 항상 보호돼야 하며, 특히 폭력이나 위협 행위, 모욕 및 대중의 호기심으로부터 보호돼야 한다'고 규정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 13조를 들어 전쟁 포로를 언론에 적극 공개하는 것이 제네바 협약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13조의 개념이 "통상 포로를 공공에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지적했다. 북한군 포로의 사진과 영상 공개는 인권 침해와 정치적 악용, 보복 위험 등의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젤렌스키의 '포로 교환' 제안이 성사될 가능성은 작다. 북한과 러시아가 여전히 북한군 파병 사실을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국제법상 포로 지위 자체가 부여되지 않을 수도 있다. 포로의 지위를 가진다 해도 본국 송환 시 탄압과 처벌의 우려가 있을 경우 포로 본국 송환 의무에서 제외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북한군 포로 본인들의 의사다. 그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북한행이든, 한국행이든, 제3국행이든 자유롭게 의사를 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한국과 국제사회는 계속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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