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0년간 이런 설 대목 처음"…자갈치시장 손님 '뚝'

연합뉴스 2025-01-14 16:00:09

불경기에 굳게 닫힌 지갑…고환율에 수산물 수입업자도 난감

한산한 자갈치시장

(부산=연합뉴스) 박성제 기자 = "포장에 넣는 냉동 홍합이나 새우의 개수를 줄여 싸게 팔까 싶습니다. 20년 장사하는 동안 이렇게 손님이 없는 건 처음인데, 어떻게라도 팔아 봐야죠."

설 명절을 2주가량 앞둔 14일 오전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

부산을 대표하는 수산물 시장인 이곳에서 제수용 냉동 홍합을 투명한 봉투에 담아 포장하던 50대 강모 씨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강씨의 점포에서는 명태, 새우, 홍합, 소라 등을 팔고 있었는데 러시아, 베트남, 뉴질랜드, 에콰도르 등 모두 수입산이었다.

그는 "환율 1원도 수산업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데, 탄핵 정국 이후 급등한 환율이 떨어질 줄을 모르고 있다"며 "가격이 부담돼 물건을 많이 떼오지도 못하고, 손님들에게 파는 가격도 어느 정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제수용 수산물 장 보러 나온 손님들

설 명절을 얼마 남기지 않았다는 말이 무색하게 이날 자갈치시장은 한산하기만 했다.

싱싱한 조기와 민어 등 생선을 비롯해 오징어와 조개 등 어패류가 판매대에 가득 올려져 있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평일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손님을 응대하는 상인보다 생선을 손질하거나 옆 가게 업주와 대화하며 불경기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차례상에 올릴 문어나 생선을 유심히 살펴보던 손님들도 가격을 듣고는 깎아달라며 흥정하거나,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딸과 함께 장을 보러 나온 70대 김정옥 씨는 "명절 때마다 신선한 수산물을 사기 위해 자갈치시장에 오는데 이렇게 사람이 없는 것은 처음이라 가게 주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면서 "명절에 가족들과 먹으려고 과일을 넉넉하게 준비하려 했는데 줄여야 하나 고민"이라며 한숨 쉬었다.

30년째 자갈치시장에서 장사했다는 50대 박모 씨는 "원래 오후 7시쯤 문을 닫는데 사람이 없다 보니 설을 앞둔 대목인데도 오후 5시면 장사를 접는다"며 "수산물 가격은 30%가량 오르고, 손님은 70%가량 줄다 보니 신선도가 생명인 수산물이 상할까 봐 재고도 줄였다"고 말했다.

설 명절 앞두고 치솟는 수산물 가격

자갈치시장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50대 배모 씨도 대목을 맞아 노상을 차려 동태를 손질하고 있었지만, 줄어든 손님에 힘이 쭉 빠진다고 했다.

그는 "원래 설에는 손님이 워낙 많아 추석보다 5일 긴 20일 동안 동태를 손질해 파는데 이번에는 사람이 너무 없다"며 "명절마다 이렇게 나와서 동태를 팔기는 했지만, 올해는 횟집에도 손님이 없어 더욱 절박한 마음으로 거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동태 1박스가 5만5천원가량이었는데 이번에는 6만원에 가져왔다. 비싸면 손님들이 사 가지 않으니까 이윤을 줄이고 예전과 같은 가격에 팔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민생 안정을 위해 설 할인행사에 예산을 투입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해양수산부 유통업체 45개 사에서 수산대전 할인행사를 진행하는 것을 비롯해 가격 안정을 위해 비축한 수산물 1만1천t을 공급하고 80억원 규모의 수산물 전용 모바일 상품권을 발행한다.

psj19@yna.co.kr